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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호 발행인칼럼 ‘천도시야비야(天道是耶非耶)’
2015-01-23 10:23:32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그렇게 고급아파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하 주차장에는 벤츠, BMW, 아오디, 폭스바겐, 포로세 등 값 비싼 자동차가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다. 어떤 경우는 숫자넘버가 똑 같은 두 대의 차량이 앞뒤로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데, 운행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주차장에 내려 갈 때마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무엇으로 이렇게 많은 돈을 벌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중국 진출 초기에 필자가 투자했던 주상복합단지(구정부와 홍콩기업이 분양)가 부도가 나자 시정부에서 일부 보상을 하겠으니 10만 위안 이상 투자자는 자금출처 근거를 제출하라고 했다. 그러자 투자자의 90%가 넘는 사람들이 보상금을 포기하는 것을 지켜봤다. 

사마천의 저서 ‘사기’의 열전 첫 편인 [백이열전]에 ‘천도시야비야(天道是耶非耶)’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하늘의 이치가 옳은지 그른지 헷갈린다는 의미인데, 사마천은 공자의 제자인 안연(顔淵)과 극악무도한 도적인 도척(盜跖)을 예로 들면서 옳고 그름의 경계와 선과 악의 결과가 뒤바뀌는 세상 이치를 한탄하는 자조석인 말이다. 안연은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스승인 공자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학문을 즐거움으로 배우고 그것을 몸소 실천한 당대의 현자였지만 이른 나이에 요절한데 반해, 도척은 사람의 간을 회로 먹고 온갖 몹쓸 짓을 하면서 악행을 일삼았지만 호의호식하며 천수를 누린 것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라며 과연 하늘의 이치가 어디에 있는지 악이 횡행하는 불공평한 시대를 비판했다.

지금 이 시대는 사마천이 낙심했던 그 시대보다 엄청나게 더한 악과 부조리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라를 다스리는 많은 지도자는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 강력한 사법의 칼날을 들이대보지만 바퀴벌레 같은 부조리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요정처요뚜이처(有政策有对策: 정책을 세우면 대책으로 대응한다)’이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생명(生命)이란 단어가 “생(生)은 명령(命令)이다(生, 命也)”에서 왔다고 한다. 생명을 부여받은 모든 존재는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인데, 문제는 생존경쟁의 리얼리즘 속을 살아가는 참된 방법론은 무엇인가에 있다. “사느냐 죽느냐”의 선택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이냐”를 탐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의 삶은 자연에서 사람과 사회의 결정으로 바뀌었다. 즉, 땅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다가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 배달되는 수돗물이나 공장에서 생산된 생수를 마시게 된 것이다. 자연의 위협이나 변덕에서는 어느 정도 해방되어 삶은 많이 편리해졌지만 자연의 자리에 대신 들어 선 사람과 사회가 인간의 행복을 파괴하거나 삶을 위협하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물론 자연도 항상 모든 사람에게 그리 공평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의 자리를 꿰찬 인간이나 사회도 차별을 없애지 못했고 오히려 확대하고 있다. 옛날에는 중병에 걸리면 부자나 가난한 자나 다 죽었지만 지금은 선진국 주민이나 돈 있는 사람은 살아남고 후진국 주민이나 가난한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들리는 소리에 중동이나 아시아의 왕족이나 재벌들이 장기이식을 받기 위해 중국 병원에 몰려 돈자랑을 하는 통에 이식비용이 날로 치솟는단다. 현실이 이러하니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챙기려고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자연에 의한 고통은 사람을 의도적으로 차별대우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고통과 불행을 모두 ‘운수소관’으로 수용했기 때문에 크게 억울해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인간이 당하는 고통의 3/4은 다른 사람과 사회에 의하여 가해지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약자들이다. 그리고 약자가 당하는 고통은 그저 가해지는 것이 아니다. 강자들이 그에 상응하는 쾌락을 누리기 위함이다. 여기서 사회정의의 문제가 불거지고  ‘천도시야비야(天道是耶非耶)’라는 말이 실감된다. 인간과 인간 사이, 특히 강자와 약자 사이에 불공정한 관계가 일어나고 사회 평화가 깨어지는 것, 정의의 문제가 대두되고 억울함을 느끼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날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철학자 밀(J. S. Mill)은 ‘정의에 대한 인식은 먼저 부정의(injustice)에 대해 인식함으로 일어난다’고 했다. 즉 부정의가 있기 때문에 정의가 요구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모든 시대에 억울함이 있었듯이 지금 이 시대에도 악한 자가 잘되고 선한 자가 고통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돈이 절대 가치가 된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힘들고 약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많이 가지려고 부조리한 행악을 서슴치 않는 자들이 잘되는 잘못된 제도가 있다면 이를 고쳐야 할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래서 ‘악은 망하고 선은 흥하는 정의로운 세상’을 지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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