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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호 발행인칼럼 ‘미생(未生)’
2015-01-23 10:30:40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갔다가 두 신선이 두는 바둑에 정신이 팔려 한정 없이 구경하다 그만 도낏자루가 썩을 만큼의 수많은 세월을 덧없이 흘려보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속담이다. 그러나 요즘은 바둑만 잘 두어도 부와 명예를 함께 얻는다.

  일전 김지석 9단이 서안에서 열린 삼성화재배에서 중국의 탕웨이싱 9단에게 2연승으로 우승을 차지해 한국 바둑계의 자존심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3억원의 우승 상금을 챙겨 애기가의 한사람으로 기분이 좋았다. 군대시절 어깨 넘어 배웠는데, 제대 후 어떤 계기가 있어 1년 동안 집중적으로 바둑을 공부해 인터넷 오로바둑  7단에 랭크되어 승률이 60% 정도는 되니 이만하면 아마추어로는 고수급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다.

  최근 한국에서는 케이블tv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미생’이 화제이다. 바둑에서 완전히 죽은 돌을 뜻하는 사석(死石)과는 달리 완전히 살아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완생(完生)할 여지가 있는 돌을 가리켜 미생(未生)이라고 한다. 즉, 미생은 상대로부터 공격을 받아 사석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두 눈을 내고 완생을 할 수도 있는 미확정된 상태이다.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열한 살 때부터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 바둑공부를 시작했지만 외아들인 그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래서 바둑에 전념할 수 없어 결국 입단에 실패, 프로기사의 꿈을 접게 되고 지인의 소개로 종합상사 계약직 사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비록 검정고시로 고졸을 마친 그였지만 타고난 순발력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회사에 엄청나게 기여를 하게 되지만 2년 계약직이라는 신분에는 변함이 없이 정식직원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생’은 직장에서의 약자, 소수자, 마이너라고 할 수 있는 여성, 직장맘이나 스펙이 없는 계약직 신입사원이 겪고 있는 현실을 리얼하게 전개하고 있다. 장그래가 카자흐스탄 사업 아이디어를 자신이 내고도 정규직 사원에게 뺏기는 상황, 심적 고통을 거쳐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면서 기득권의 막강한 힘과 횡포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볼 수가 있다. 불합리하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갑을관계’가 나오고, 거래처, 다양한 부서와의 관계 등 자연스러운 시스템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면서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 해결책은 바둑의 형세처럼 고정 불변하는 게 아니고, 무엇을 죽이고 무엇을 살려야 하는지, 상황에 따른 판단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보여주며 다양한 원리들이 작용함을 그려낸다. 장백기(강하늘)처럼 ‘머리’와 ‘스펙’으로만 하는 것도 아니고, 장그래처럼 ‘가슴’과 ‘인간미’로만 풀어가는 게 아니라, 때로는 두 가지 요소와 성향을 합쳐야 함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미생’은 약자인 장그래의 아픔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런 친구에게 용기를 북돋아준다는 점이 심정적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어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일전 흥사단 윤리연구센터가 국내 처음으로 2014년 직장인을 대상으로 정직지수 조사 결과를 언론에 발표했다. 조사 결과 대한민국 직장인의 정직·윤리 의식은 58.3점으로 2013년 조사한 청소년 정직지수에 비해 15.7점이나 낮았다. 청소년의 귀감이 돼야 할 성인들이 오히려 청소년보다 낮은 정직 윤리의식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정직지수는 돈이면 다 된다는 의식이 한국사회에 팽배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전 신문 사회면에 주식투자로 성공한 30대 젊은이의 만행이 나왔다. 10대에 300만원으로 시작한 주식 투자로 100억대의 재산을 축적한 이 젊은이가 술집에서 종업원을 폭행했다. 주식투자의 귀재로 불리며 부러움을 샀던 이 젊은이는 파출소에 연행되어 와서도 “내가 가진 100억 중 10억만 쓰면 너희들을 다 자를 수 있어, 돈도 없는 것들이 나이만 먹어가지고”라며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땅콩 회항’ 사건도 동일 선상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청년 실업이 급증하면서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나오고 ‘전 국민의 비정규직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러한 현실에는 이처럼 취업을 위해 정규직이 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드라마 미생의 “회사는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다.”는 대사가 공감을 얻는다.

  바둑의 위기십결(圍棋十訣)에 ‘너무 욕심을 내면 패한다.’는 욕탐불승(欲貪不勝)이라는 말이 있다. 바둑판의 치열한 전투 같은 이 세상에서 사석이 되지 않고 완생하기 위해서는 무리한 욕심보다 깊은 수읽기에 의한 정확한 행마가 있어야 한다.

 

<2014년 미디어 광장을 성원해 주신 독자제위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을미년 새해에는 계획하시는 일들과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풍성히 임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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