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 수용 규모로 1932년 개장, 상류층 춤바람 불러
- ▲ 바이르먼클럽 photo 바이두
1930 년대 ‘동양의 파리’로 불리던 상하이 최고의 사교법은 ‘댄스’였다. 당시 상하이를 지배하던 장제스(蔣介石)를 비롯한 국민당 고위 관료와 자본가들은 댄스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심지어 국민당 정부는 ‘신생활운동’을 전개하면서 춤바람을 공식적으로 장려하기도 했다.
상하이 도심 한가운데 자리잡은 바이르먼클럽(百樂門舞?)은 그 당시 최고 인기를 끌던 나이트클럽이다. 1932년 구롄청(顧聯乘)이란 부호가 당시 돈으로 은자 70만냥을 투자해 개업한 곳이다. 동시에 1000명이 입장해서 춤을 출 수 있는 규모를 자랑해 상하이 조계에 살던 외국인들로부터 ‘동양 최고의 나이트클럽’이란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웨이터가 파트너를 구해주는 ‘부킹제도’가 없어 상하이 현지인들에게는 별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역사적인 부침을 겪기도 했다. 1940년에는 무대 한가운데서 천완리(陳曼麗)라는 무희가 일본인의 총에 맞아 피살되는 사건이 터졌다.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그녀가 일본인과 춤추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또 1947년 국공내전 때는 전세가 불리하던 국민당이 상하이의 모든 클럽을 폐쇄하는 조치를 내리자 이에 항의하는 무희와 악사, 웨이터들의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무희들의 수입은 일반인의 10배였다. 이후 공산당이 상하이를 접수한 뒤에는 나이트클럽에서 영화관으로 업종을 바꿔야만 했다.
하지만 지난 2002년부터 다시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어둠이 깔리면 하늘색 네온사인을 번쩍이며 지나가는 사람을 유혹한다. 오래된 건물이라 외관은 비록 낡았지만 클럽 문 앞에는 검정 양복을 차려 입은 기도들이 입구를 지키면서 ‘수질’을 관리한다. 입장료는 따로 계산하고 안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몸에 달라붙는 치파오(旗袍)를 입은 무희들에게 직접 사교댄스를 배울 수도 있다. 또 클럽 건너편에는 바이르먼이란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호텔이 있어 춤을 추다 피곤하면 쉬어갈 수도 있다.
한 국으로 치면 중년 남성과 여성들이 모여 춤을 추는 카바레에 해당하지만 1930년대 화려했던 상하이를 떠올리기에는 가장 좋은 장소다. 상하이 최대 불교사찰인 징안쓰(靜安寺)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어둠이 깔리면 묘한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중국 전역에도 과거 바이르먼의 영광을 재연하듯 수많은 유흥주점(KTV)들이 ‘바이르먼’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가는 길
푸 둥국제공항에서 2번 공항버스를 타고 징안쓰 도심공항버스터미널에 내리면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교통정체가 심해 버스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대신 푸둥공항에서 자기부상열차를 타고 룽양루역에서 내린 뒤 2호선으로 갈아타고 징안쓰역으로 찾아가는 방법이 가장 빠르다.
주변 볼거리
바이르먼클럽 맞은편에는 바이르먼호텔이 있다. 3성급 호텔로 지금은 많이 낡았지만 한때 상하이 최고의 호텔로 군림하던 곳이다. 이 호텔의 꼭대기 층에는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火鍋)를 내놓는 ‘도우라오팡(豆撈坊)’이란 식당이 있다. 신선한 재료와 함께 족히 40가지가 넘는 소스를 직접 골라먹을 수 있는 곳으로 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하이구이파(海歸派)’들이 즐겨찾는 식당으로 유명하다.
조선일보 / 이동훈 기자 flatron2@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