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21일 중국
베이징시
조양구 정부는 제1기 ‘국외 고급인재’를 선정했다. 베이징시 조양구에서 근무하는 국외 유학파 중국인, 홍콩과 타이완 시민을 포함한 국외 화교, 외국인이 대상. 각 산업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 26명이 최종 선발됐다.
26인 중 외국인은 단 2명. CB리처드엘리스(CB Richard Ellis)그룹 아시아 대표인 영국인과
김희태 중국 우리은행장이 그 주인공이다. 결국 김 행장이 유일한 한국인이다.
2008년 4월 김희태 당시 우리은행 경영지원본부 부행장이 중국 우리은행 행장으로 선임된 이후 중국 우리은행은 중국 내 한국계 은행으로서는 ‘최초’ 서비스를 줄줄이 선보였다. 지난해 시장에 내놓은 직불카드와 올해 이뤄낸 위안화 직접결제, 선물환과 금리스와프 등 파생상품업무 취급 자격 획득, 중국인 고객경리(영업직원)제 도입 등이 대표적인 내용이다.
이 같은 최초 서비스 도입을 통해 중국 우리은행은 눈부신 성과를 거둬내고 있다.
2007년 11월 81%이던 한국계 고객 비율은 올 5월 말 45%로 줄었다. 나머지 55%는 중국계 고객이 차지한다. 급속도로 현지화되고 있는 셈이다. 2007년 11월 1억달러에 불과했던 예금액은 올 5월 말 무려 8억1558만달러로 8배 이상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급증했다. 2007년 11월 122만달러였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말에는 5146만달러로 늘어났다. 올 들어서는 5월까지 2147만달러 영업이익을 기록 중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직불카드를 내놓은 덕에
우리은행 카드로 중국 전역 은행 ATM 기기를 통해 입출금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고객이 급증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위안화 직접결제와 파생상품업무 취급 자격 획득을 통해 중국 우리은행은 진짜 날개를 달게 됐어요. 현재 중국 우리은행은 중국 내 외국계 은행 중 15위권 안팎에 머물러 있습니다. 두 가지 서비스 실시를 계기로 연내 10위권 안에 안착하는 게 목표입니다.”
단순히 위안화 직접결제 서비스를 시작하고 파생상품업무 취급 자격을 획득했다는 것만으로 한 단계 ‘펑’ 업그레이드가 가능할까? 실제 두 가지는 중국 내에서 폭발적인 영업실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위안화 직접결제 서비스’란 중국 내 기업과 거래하는 한국 기업이 서로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뜻한다.
예를 들어 중국현대는 중국 베이징 공장에서 현대차를 생산해 100% 중국에서 위안화를 받고 판매한다. 중국현대는 대부분의 부품을 중국 현지에서 조달받지만, 일부 부품은 한국에서 들여온다. 한국에서 들여오는 부품에 대해 지금까지는 달러화로 결제를 해왔다.
당연히 위안화를 달러화로 바꿔 송금해야 했다. 부품 수입 때마다 결제를 해야 한다면 매번 위안화를 달러화로 바꿔야 한다. 수고로운 것은 둘째치고 이 과정에서 환전 수수료가 발생한다. 환 리스크는 기본이다. 자칫 위안화 대비 달러화 강세 현상이라도 벌어질라치면 눈물을 머금고 환차손을 감수해야 한다.
중국현대로부터 달러화를 받는 한국 부품업체도 마찬가지다. 부품업체가 부품을 만들기 위한 원재료의 상당부분은 또 중국에서 수입해온다. 부품업체는 중국현대로부터 받은 달러화를 다시 위안화로 바꿔 중국 원자재 업체로부터 원자재를 사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다시 한 번 환전 수수료와 환리스크가 생겨난다. 특히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위안화가 강세를 보이는 시기라면 사정은 더욱 심각할 수 있다.
위안화 직접결제 서비스는 중국현대가 한국 부품기업에 줄 대금을 달러화로 환전하지 않고 바로 위안화로 보낼 수 있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양사 모두 번거로움을 줄이고, 환전 수수료와 환리스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이 거래를 대행하는 우리은행으로서는 환전수수료가 줄어든다는 난점이 있다. 반면 고객 접점을 넓힐 수 있다는 데서 무한한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실제 지난 6월 28일 우리은행이
롯데호텔에서 연 ‘위안화 무역거래 세미나’에는 시중은행 외환담당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기업뿐 아니라 국내 시중은행들도 이 서비스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의미. 현재 거래 고객 기업에 위안화 직접결제 서비스를 해주지 못하는 국내 시중은행들이 우리은행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위안화 직접결제 서비스를 해주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역시 중국 내 한국계 은행으로서 최초로 취득한 파생상품 취급 자격은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위안화 직접결제 서비스가 한국 기업과 거래를 하는 중국 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인 반면, 파생상품 취급 자격 취득은 중국 내 기업과 개인고객을 큰 폭으로 늘릴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요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생상품 취급 자격을 획득했다는 것은 프리미엄 이미지 구축에도 상당한 플러스가 된다. 전문인력, 시스템, 제도 등이 모두 갖춰진 은행임을 입증해주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중국 금융시장은 정부에 의한 규제가 상당하다. 예금 이자와 대출 이자도 정부가 정해준 기준에 철저하게 따라야 한다. 현재 중국의 예대금리 차는 2.5%. 어느 은행에 가나 예금 이자가 같은 상황에서 고객이 은행을 선택하는 기준은 얼마나 이용하기 편리한가일 뿐이다.
이용 편의성에서 중국 우리은행은 거의 경쟁력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중국 우리은행은 베이징에 3개 등 중국 전역에 고작 11개 지점을 보유하고 있다. 지점도 거의 동부 연안에 집중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우리은행이 조금이라도 차별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예금 금리, 보다 저렴한 대출 금리 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고객 비율 55%
파생상품 취급 자격 획득은 이를 가능하게 해준다. 파생상품 자체가 일반 예금보다 고수익을 노리고 가입하는 상품인 때문이다.
“내년 말까지 중국 내 모든 은행은 예대비율을 75%까지 맞춰야 합니다. 현재 중국 우리은행은 140%예요. 지금 모든 은행이 예대비율을 과연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대해 엄청 고민하고 있습니다. 물론 소극적으로 대출을 줄여 비율을 맞출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희는 적극적으로 예금을 늘려 예대비율을 맞출 계획을 세워놨습니다. 파생상품 취급 자격 취득이 예대비율을 맞추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중국인 영업직원 제도를 도입한 것도 예금액을 크게 늘리는 데 일조했다. 현재 중국 우리은행 내 중국인 영업직원은 모두 11명. 올해 말까지 35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 이들 중국인 영업직원은 우리은행의 중국 기업, 개인 고객 비율을 크게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김 행장은 또 중국인을 선발해 PB 교육을 시키고 있기도 하다. 향후 어차피 PB를 도입해야 할 텐데 PB 분야에서도 중국인을 앞세워 공략한다면 중국시장을 제대로 파고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중국시장에서 중국인을 앞세워 영업을 한다는 게 너무 당연한 얘기 같아 보이지만, 지금까지 한국계 은행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중국에는 한국 기업과 한국인이 많이 들어와 있어서 이들만 대상으로 영업을 해도 당장 먹고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거든요. 그러나 그렇게 하고 말거면 중국에 들어온 의미가 없습니다. 2008년 4월 중국 우리은행 행장으로 오자마자 어떻게 하면 중국인 고객을 늘릴 수 있을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민했어요. 중국시장을 제대로 공략해 제대로 된 중국은행을 만들어보자 생각했지요. 이제 기반이 잡힌 만큼 앞으로의 발전 속도는 훨씬 가팔라지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작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김희태 중국 우리은행장은 중앙대 법학과를 나와 77년
한일은행에 입행해 30년 넘게 은행원 외길을 걸어왔다. 우리은행 업무지원본부 부행장과 경영지원본부 부행장을 거쳐 2008년 4월 중국 우리은행 행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7년 11월에 법인이 설립된 중국 우리은행이 ‘현재 중국에 진출한
한국 은행 중 가장 잘 하고 있는 은행’으로 꼽히는 것은 모두 김 행장 덕분이라는 게 업계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