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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너 레드스톤 - 바이어컴 회장 겸 CEO(81세)
2006-12-11 02:19:52


섬너 레드스톤 - 바이어컴 회장 겸 CEO(81세)
1923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난 레드스톤 회장은 1947년 하버드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법조인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1945년 내셔널어뮤즈먼트에 합류한 이후 줄곧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몸담아 왔다. 1987년 바이어컴을 1994년 파라마운트를 1999년 CBS를 각각 인수해 뉴스코퍼레이션의 루퍼트 머독, CNN의 테드 터너와 함께 세계 3대 언론 재벌의 자리에 올랐다.



♠ "당신의 타고난 직감을 따르세요"

파라마운트픽처스, MTV, 니켈로디온, 블록버스터, 사이먼 & 슈스터, CBS 등 대형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그룹을 세운 섬너 레드스톤은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의 상위 600개 기업의 CEO들로부터 ‘어머니 다음으로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에 뽑히기도 했다. 그는 주변 사람의 말에 흔들리기보다 자신의 직감대로 일을 처리하기로 유명하다. 이 방법은 인생의 수많은 굴곡을 거치며 만난 동료이자, 친구가 전해준 조언이기도 하다.


♠ 가난했던 유대인, 미디어 사업에 뛰어들다

1923년 미국 보스턴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레드스톤은 보스턴 라틴고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하버드대학 재학 중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 암호 해독 특수부대에서 근무했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어느 날 변호사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954년 레드스톤은 아버지가 경영하던 조그마한 나이트클럽을 물려받아 사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수완이 좋았던 아버지는 사업을 확장, 보스턴 등 뉴잉글랜드 일대 극장 체인점을 구축했다. 당연히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쇼 비즈니스가 뭔지 배웠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까지 미디어 업계에서는 ‘레드스톤’이란 이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바이어컴 인수 이후부터였다.

바이어컴은 그가 미디어 제국을 만드는 발판이었다. 음악 전문 채널 MTV와 어린이 채널 니켈로디온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는 또한 1994년엔 USA네트워크의 딜러와 혈전을 벌이며 파라마운트를 손에 넣었다. 이때부터 바이어컴은 어린이부터 청장년, 중년층을 모두 대상으로 하는 엔터네인먼트 콘텐츠를 모두 갖게 됐다. 하지만 레드스톤은 빚더미 위에 올랐다. 그는 무자비할 정도로 비용을 줄이고, 자산을 매각했다.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 위치한 매디슨 스퀘어 가든과 프로 스포츠팀, 라디오 방송국, 비디오 게임 회사 등을 주저없이 팔았다. 결국 파라마운트의 부채는 110억 달러에서 40억 달러로 줄었다.


♠ 15년 동안 조언해준 고마운 파트너

그는 사업을 하다가 어려움에 처하면 베어 스턴스(Bear Stearns)의 에이스 그린버그(Ace Greenberg)에게 종종 자문을 구해 왔다. 두 사람은 15년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린버그는 파라마운트 인수 때부터 그가 관여한 모든 자금의 이동에 조언자로 활약해 온 파트너다.

“직감에 따라 결정하세요. 비관론자나 당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면 안 됩니다.”
레드스톤은 그린버그가 전해준 이 조언을 항상 명심했다. 실제로 바이어컴이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도 이 말을 이용했다. 그가 바이어컴을 놓고 테리 엘크스와 치열한 전쟁을 벌일 때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바이어컴을 너무 비싼 가격에 인수했다, 또는 MTV는 일시적인 유행일 뿐이다, 니켈로디온은 결코 살아날 수 없다며 그를 공격했다.

당시 그의 관점은 달랐다. MTV가 단지 음악을 틀어주는 채널이 아닌 문화 채널, 특정 세대의 채널, 그리고 전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는 채널이라 생각했다. 니켈로디온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로서 그리고 조부모로서의 그의 직감은 어린이 채널보다 더 중요한게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의 직감은 또 세계 모든 어린이들과 같은 생각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과잉투자라고 말했다. 당시 그의 투자금액은 5억 달러였다. 그러나 투자 성적표는 오히려 처음 투자 때 주식 가치보다 훨씬 좋아져 있다. 레드스톤이 그린버그의 조언을 왜 중요하게 여겼는지 잘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 환갑이 넘은 나이에 모험을 시작하다

“바이어컴은 나다. 나는 곧 바이어컴이다, 이 결혼은 영원할 것이다. 또한 나는 나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올해로 81세가 된 레드스톤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일중독자 이상이다. 그와 회사는 한 몸이다. 가끔 테니스를 치는 것 외에 특별한 취미도 없다. 레드스톤은 바이어컴 의결권의 68%를 통제하고, 발행 주식의 13%를 소유하고 있다. 그에게 바이어컴은 회사가 아니라 그 자신이다. 회사는 그의 인생이고, 취미이고, 그의 모든 것이다. 일과 휴식, 주중과 주말, 사람과 회사 사이에 경계란 없다.

파라마운트 인수전이 한창 진행 중일 때였다. 그는 인수에 필요한 사항을 점검하느라 주말에도 새벽 5시부터 부하 직원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견디다 못한 부하는 아내가 새벽잠을 자꾸 설친다면서 아침 7시까지는 전화를 받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레드스톤은 부하에게 정중하게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다음 날 정확하게 아침 7시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지금도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개봉 영화의 전날 관람객 현황을 체크한다.

그는 방송 미디어가 본업이 아니었음에도, 다른 사람 같으면 은퇴할 나이인 63세 때 바이어컴을 인수했다. 또한 그는 ‘콘텐츠가 왕’이란 직감을 가지고 있었다. 채권 은행들은 부채 정리를 위해 MTV 등을 매각하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끝끝내 콘텐츠 제조 능력이 있는 채널을 팔지 않고, 케이블 시스템을 팔아 버렸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 덕택에 바이어컴은 빠르게 회생할 수 있었다. 월가를 열광시키는 그의 저력만큼은 젊은 경영자들을 능가한다. 지난 1987년 바이어컴에 100달러를 투자한 주주는 현재 926달러를 회수할 수 있다. 만약 타임워너에 같은 액수를 투자했다면 771달러, 디즈니라면 770달러, 뉴스코퍼레이션이라면 543달러가 된다.


♠ 대형 화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레드스톤

레드스톤은 돈에 욕심이 있거나, 사치스러운 것을 즐기지 않는다. 뉴욕에서 일을 보지 않을 때는 보스턴 인근의 4만 3,000달러짜리 허름한 집에서 회사 일을 챙긴다. 할리우드에서는 아침에 산책을 한 후 테니스장에 들렀다가 자신의 스튜디오를 둘러보는 것이 가장 행복한 아침이라고 여긴다. 그는 낙관론자다. 낙관이라는 것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랄 수 있다. 그린버그의 조언처럼 주변의 비관론자나,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는 것보다 자신을 믿고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레드스톤은 1979년 보스턴 코플리 플라자 호텔 화재로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됐다. 당시 그는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의사는 생명을 건지더라도 걷지 못하고, 오른팔도 잃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오른손에 가죽 끈으로 라켓을 묶은 채 여전히 테니스를 즐긴다. “코스에서 이탈하지 않는 거야. 끝까지 버티는 거지. 낙오되는 것을 거부하는 거야. 나는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의사는 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걸을 수 있다고 말했지. 지금은 이렇게 테니스 코트에서 뛰어다니고 있지.” 부상을 견디어낸 후 그가 털어놓은 말이다. 레드스톤은 의사의 말에 절망하고 누워 있는 대신, 자신의 직감에 따라 물리치료를 받았다. 또한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까지 장애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건강 관리에만은 철저하다. 자신과 한 몸인 회사를 지켜 나가기 위해서다.


♠ 보수적인 경영이 이룬 성과

온라인과 오프라인 기업의 통합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시킨다며 화려하게 출발했던 대형 미디어 기업들이 속속 쓰러졌다. AOL타임워너, 비방디 등은 막대한 부채와 주가 하락으로 비틀거렸고, 한때 최고의 미디어기업 AOL타임워너는 회계 부정 의혹과 경영진 갈등을 수습하기에 급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3위 미디어그룹 바이어컴의 보수적인 경영은 투자자는 물론 미국 재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기준으론 세계 3위지만 물론 미국 재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기준으론 세계 3위지만 시가 총액으론 약 672억 달러로 세계 1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바이어컴은 경쟁사와 달리 인터넷 기업과의 통합에 신중히 접근해 신미디어와 구미디어 사이의 합병이 제대로 시너지를 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뛰어난 결단력을 보인 사람이 바로 섬너 레드스톤 바이어컴 회장이다. 그의 통찰력과 직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영화관 운영사인 내셔널어뮤즈먼트 회장, 전미 극장주협회장 등을 지내며 엔터테인먼트 산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였지만, 인터넷 등 뉴미디어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은 수익성이 의심스럽다며 신중한 자세를 지켰던 것이다. 1999년 로버트 피트먼 AOL 사장의 인수 제의도 거절했다.

AOL 타임워너, 비방디 등이 곤두박질치는 동안 바이어컴은 CBS 인수와 광고 시장 회복으로 착실히 성장했다.
레드스톤 회장은 닷컴 열풍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으면서도 인터넷 미디어의 가치를 인정하고 현실적으로 관련 사업을 펼쳐갔다. MTV의 웹사이트는 음악 다운로드, 콘서트 티켓 예매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TV와 인터넷을 접목했다.

현재 바이어컴은 MTVi, CBS인터넷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닷컴 환상에 들떠 있을 때조차, 그는 인생 최고의 조언대로 자신의 직감을 따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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