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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과의 전쟁에서 당당히 승리한 뱃살 공주들의 '즐거운 반란'
2006-12-11 02:39:34


 


1. 19kg 감량으로 '뱃살 공주'를 벗어나다 - 이순자 주부     

결혼 후 10년, 두 아이 출산 후 포기하다시피 그저 그렇게 생활하면서 타성에 젖어 있는 내가 뱃살 빼기에 도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가족들과 찜질방에 갔는데 체중계가 눈에 들어왔다. 살이 찌면서부터는 너무도 멀리하고픈 물건이었으나 나도 모르게 올라선 체중계의 눈금은 무려 79kg을 가리키고 있었다. 너무도 놀라 다시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올라섰지만 역시나 똑같았다. 누가 볼까봐 얼른 내려왔는데 일곱 살난 딸이 그걸 보고는 "아빠, 엄마 79kg 나가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 얘기를 들은 남편은 "엄마가 아빠보다 몸무게가 조금 더 나간다"고 대꾸했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날씨가 춥다는 핑계로 운동을 실천에 옮기진 못했다.
  
또 한번 뱃살로 인해 신랑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남편의 회사에서 부부동반으로 호주, 뉴질랜드 여행을 가기로 되었는데 "이순자 때문에 비행기가 뜰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런데 좌석이 비좁아 비즈니스석을 예약해야 되지 않을까?"라며 놀려대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보건소가 주관하는 뱃살 빼기 프로그램을 듣게 되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서먹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공동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의 서먹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아 언니, 동생, 친구가 되었다. 우리팀은 대단한 각오로 20팀 중 1등을 목표로 정했다. 그리고 각자 감량 목표를 정하는데 나는 자신없는 말투로 5kg을 뺀다고 했다가 팀원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이유인즉 보기에는 제일 많이 감량해야 할 대상자가 제일 적게 감량을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일단 워밍업 삼아 인근의 산을 오르는 것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아침에 남편과 아이들이 나가고 나면 황방산에 다녀오는 것을 시작으로 전주시 생활체육센터에서 무료로 가르쳐주는 인라인스케이트도 배우고 보건소에서 정해준 복싱 다이어트 클럽에도 갔다. 그야말로 시간만 나면 운동을 하며 생소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역시 '걷는 운동'이었다. 저녁식사 2시간 후 학교 운동장 또는 하천변을 걸었다. 저녁 식사 후에 걸어서 더욱 더 효과를 본 것 같다. 평상시 같으면 택시나 버스를 타고 다닐 거리를 무작정 걸어 다니기도 했다.
  
체중을 처음 측정한지 20일 만에 4.9kg이나 체중이 감량되었다. 놀라운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노력 하니까 나에게도 변화가 생긴다는 걸 알았다. 우리 팀은 살이 더 찐 사람은 벌금을 물기로 했다. 그 벌금으로 오이와 토마토를 사서 나눠 먹기도 했다. 아줌마들이라 벌금을 내도 먹을 것을 나눠주니 다들 너무 좋아하는 것이었다. 항상 팀원들이 웃으면서 같이 운동을 하니까 슬럼프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뱃살을 뺄 수 있었다. 때로는 많이 걸어 양쪽 발에 물집이 잡혀 너무 아팠다. 하지만 살이 빠지는 재미에 아픔도 잠시 잊은 채 운동을 강행했다. 하루도 쉬어본 날이 없었다. 운동을 하면서 팀원들 중에는 발톱이 빠진 사람도 몇 명 있었다.  

뱃살과의 싸움을 시작한지 1개월이 지나서 서울 시누이 아들 결혼식에 갔다. 무려 5kg 정도 빠졌는데 친척들이 못 알아봐서 내심 섭섭했다. 예식이 끝나고 식사를 하려는데 뷔페라 먹을 게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음식을 보는 순간 칼로리 계산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샐러드와 야채, 국수만 먹었다.
  
한번은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데 삼겹살 한 조각에 50칼로리라는 것이 생각나 마음놓고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구워 주기만 하고 식구들에게 "나는 안 먹을 테니까 많이들 먹어라"고 했다. 나중에 보니 정말 다 먹고 딱 한 조각이 남아 있었다. 그게 어찌나 맛있던지. 매끼 식사 때마다 칼로리 계산을 생활화하고 특히 저녁 때 폭식을 하던 버릇을 고치려고 애를 썼다. 먹는 것을 그렇게 차츰차츰 줄여갔더니 팀원들은 나에게 독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2개월째에 중간 측정이 있었다. 팀원들은 100g이라도 줄여 보겠다고 걸어서 보건소에 갔다. 결과는 너무도 놀라운 12kg 감량! 두 달간 식사도 거르지 않았고 꾸준히 운동한 결과였다. 뱃살 빼기를 시작한 지 석달이 지난 후 체지방 감소를 위해 헬스클럽엘 다녔다. 시가 운영하는 생활체육 프로그램을 통해 무료로 다닐 수 있는 곳이었다. 또한 비가와도 우산을 들고 걸었다. 비가 그치면 근육량을 늘리고 싶은 생각에 우산을 아령 삼아 들고 걸었다. 물론 걸을 땐 항상 '파워 워킹'을 했다.
  
뱃살 빼기에 나선 4개월 동안 친구들과의 만남도, 지인들과의 모임도 모두 미루거나 부득이하게 참석하더라도 먼저 빠져나와 운동을 하곤 했다. 어느 순간 거울 보는 횟수가 잦아졌다. 급기야 '최종 감량 19kg'은 기적이 아닌 현실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느낀 자신감 회복은 직접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커다란 재산일 것이다. 우리 팀은 1등을 했고 또한 나는 개인 1등을 차지했다. 아이들을 시상식에 데리고 갔는데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좋았다.
  
예전보다 날씬해진 몸으로 비즈니스석을 예매하지 않고도 호주행 비행기에 거뜬히 오를 수 있었다. 모두들 달라진 내 모습에 부러움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여행하는 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다. 시상식 이후에도 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아침마다 산에 오르고 저녁식사 후엔 하천변에 가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을 돌곤 한다.

현상유지는 퇴보라는 생각으로 좀 더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나는 뱃살 빼기에 매진하려 한다. 끝으로 뱃살을 빼고 싶으신 분들에게 선배로서 한 마디 전하면 뱃살 빼기는 자신과의 싸움이라 생각할 것. 식사는 절대 거르지 말고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은 필수이며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한 삶을 누리시기 바란다. 뱃살 탈출을 위해 우리 모두 힘차게 전진합시다. 대한민국 주부들 화이팅!


2. 이를 악물고 이룬 '몸짱 신화' - 고영주 주부               
                                                
결혼을 하고 아이 두 명을 낳으면서 내 몸무게는 주체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 아이 한 명 낳을 때마다 거의 10kg씩 늘어났기 때문이다. 체중이 쉽게 느는 체질이라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아 여러 차례 도전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어느 날 퇴근 길에 전주시 보건소 뱃살 센터에서 실시하는 제1회 뱃살 빼기 대회 공고문을 보고 '몸짱 신화'라고 이름지은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나의 생활 수칙은 보건소에서 대회 참가자를 위해 교육한 대로 매일 유산소운동(걷기, 조깅, 수영 등)을 하루에 40분 이상 하고, 하루 세번 규칙적으로 식사하며 아침식사를 거르지 않는 것. 그리고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식품은 자제하는 것이었다. 이를 반드시 준수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특성을 고려하여 내 나름대로 나의 여건에 맞는 운동 방법을 개발하여 실천하는 것이었다.
  
30분 거리에 위치한 회사까지 걸어서 출퇴근을 하고, 점심시간에는 회사 인근 야산(건지산)을 40분 동안 오르내렸다. 저녁은 야채 위주의 식단으로 바꿨고, 저녁 식사 후에는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나가 1시간 이상 뛰거나 걸었다. 운동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에 비가 와도 우산을 쓰거나 비옷을 입고 운동장을 돌았다. 폭우가 쏟아질 때는 아파트 1층부터 19층까지 걸어서 올라갔다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내려와 다시 오르기를 여러번 반복했다.

매일 운동하는 습관이 몸에 붙자 몸무게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1개월, 2개월, 3개월… 운동이 계속되자 내 몸속의 기름 덩어리들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탈출하기 시작했다. 몸무게가 줄어들자 힘든 운동도 신이나기 시작했고 자신감도 붙었다.

그렇게 5∼6개월 후 드디어 각 팀별 체중감량의 결과를 측정하는 날이 다가왔다. 처음 뱃살 빼기 대회를 시작할 때 체중 및 체지방, 근육량 등을 측정했던 것과 뱃살 빼기 대회 종료 된 날 측정한 것을 비교하여 그 결과로 각 팀별 순위를 매기기로 되어 있었다.


3. 남편이 나를 훔쳐보기 시작했다 - 김경은 주부 
                                               
그랬다. 나처럼 비만인 사람 대부분이 동감하듯 본인은 뚱뚱함의 심각성을 잘 모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어쩌나∼"라며 혀를 차고, 한심스러워 했다는 것을. 더욱이 나 같은 경우엔 바른 말을 전하는 신하에게 참형(?)을 가하는 폭군이었기에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딱 보기 좋아. 먹어.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대!", "부잣집 맏며느리 감처럼 생겼네!" 등등 입에 발린 이야기만 해댔고 내 외모는 점점 자유로워져 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업상의 금전 문제까지 겹치면서 나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잦은 폭식과 습관적인 야식, 심한 우울증으로 바깥출입도 안한 채 집 안에서만 살았다. 그러다 보니 '미스'같은 '미시족'과 '몸짱', '얼짱'이 판치는 요즘, 나는 서른일곱 살의 아름다운 나이에 움직임조차도 둔해져 조금만 무리를 하면 밤새도록 다리가 아파 잠을 설쳐야 했다. 물론 내 몸에 맞는 옷이 없어 '트레이닝'복이나 남편이 입던 큰 옷을 대강 입었고 우울증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려 성격이 괴팍해졌다. 자연히 아이들에겐 신경질적인 엄마로, 남편에게는 무기력한 뚱뚱보, 욕심쟁이 마누라로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어느 누구도 내 외모의 심각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때 나선 용감한 분이 계시다. 바로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날 볼 때마다 걱정에 찬 잔소리를 하셨다. 뚱뚱한 외모도 문제지만 그로 인한 합병증으로 고생할까봐 노심초사하며, 아직은 젊고 사랑받을 나이에 그런 몸을 유지한다는 건 남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나를 자극하셨다. 심지어 내 손을 붙잡고 한의원이며 다이어트 식품 전문점을 오가셨다. 그러나 난 언성을 높여 가며 볼멘소리로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며 심지어 엄마를 피해 친정집에 발을 끊기까지 했다.
  
내가 심각한 과체중에 복부비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바로 뱃살 빼기 대회에 참가하면서였다. 장난삼아 시작했지만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내 몸을 점검해보니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영양사 선생님께 적절한 식단 메뉴라든가 칼로리 계산법 등의 강의를 들으며 확실하게 '동기 부여'가 된 것 같다.
  
먼저 집 근처 헬스장에 등록한 뒤 스트레칭과 러닝머신을 열심히 했다. 처음엔 20분을 넘기기도 어려웠는데 점차로 운동량이 늘어나서 보름이 지났을 때는 1시간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었다.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는 '스피닝'이라는 자전거 타기는 정말이지 최고로 멋지게 열심히 탔다. 트레이너는 나처럼 과체중인 사람은 땀을 많이 흘리는 '유산소' 운동부터 해야 효과를 본다며 '윗몸 일으키기'랑 '훌라후프'를 병행하게 했다. 또 1주일에 서너 번은 덤벨을 30분 정도 보충해 줌으로써 '근력 운동'에도 신경을 썼다.
  
내 경우에 무엇보다도 효과를 본 건 '식사 조절'이었는데 매일 3∼4시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저녁 6시 이후엔 음식을 먹지 않는 방법이다. 오후 5시 59분까지는 정신없이 먹다가도 6시가 되면 숟가락을 내려놨다. 모임에 가서도 녹차 정도만 마셨고 내가 다이어트 중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했다.
  
석 달 정도를 그렇게 했더니 정말 효과가 있었다. 몸무게가 10kg 이상 줄었고 몸이 예전에 비해서 훨씬 가벼워져서 활동하기 편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냈다는 자신감 때문에 지독했던 우울증에서 점차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몸무게의 수치가 내려갈 때마다 나의 자신감은 올라만 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다이어트 중 힘들 때면 항상 이 말을 되새겼던 것 같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어렵게 운동을 하던 중에 엄지 발톱이 한 번 빠졌고 훌라후프를 배우느라 배에 멍을 달고 살았다. 윗몸 일으키기를 많이 하다 보니 꼬리뼈의 살 껍질이 벗겨져 쓰라렸고 자전거를 타다가 여기 저기 부딪쳐 다리에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는 전혀 아프지 않고 신이 났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난 운동을 계속하고 있고 이번에 뺀 살 유지하기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복한 건 언제부턴가 변화 된 나의 몸매 때문인지 남편이 날 훔쳐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여자로서 사랑 듬뿍 받으며 예쁘게 살고 싶다. 자신 있다! 아자! 아자!! 파이팅!!!


4. 긍정적인 사고로 성공한 ‘뱃살 반란’ - 박정이 주부 
                                               
첫아이 출산 이후부터 점차 불어나기 시작한 체중은 둘째를 낳고 더 늘었다. 거기에 몸이 아파 보약을 먹으면서 가속도가 붙더니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작업을 하면서 절정을 이루어 드디어 고도비만의 대열에 당당히 입성하게 되었다. 결혼 전에는 체중이 1kg만 불어도 몸이 둔해지고 활동이 불편했는데 어느새 불어난 20kg의 살들과 친해진 후에는 "세상에 날씬한 것들만 있으면 무슨 재미냐? 키가 큰 사람,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 날씬한 사람, 골고루 어울려 살아야 재미가 있지"라며 아주 당당해졌다. 그야말로 뱃심(뱃살의 힘)으로 말이다.

2004년 쓰레기 만두 파동 이후, 작은 분식가게에서 4년간 손만두 담당으로 일하던 나는 실직자가 되고 말았다. 하루에 11시간씩 힘겹게 일할 때에는 시간이 없어서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마음 속에는 비만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있었다.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갈수록 몸은 경고를 보냈다. 낮은 오르막길에도 숨이 차고, 다리가 팍팍하고, 잠자면서 자주 손발이 저렸다. 살을 빼야 한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때로는 학교 운동장도 돌아보고 어쩌다가는 산에도 가보지만 늘 그때뿐이었다.
  
뱃살 빼기 대회의 '내몸 사랑'팀에 합류해 1차 측정이 있던 날, 나와 쌀 한 가마는 거의 친구 사이였다. 식단 일지를 쓰면서 식사량을 조금씩 줄이고 헬스클럽에서 1주일에 2번씩 모여 운동을 하였지만 나는 1개월쯤 후에 그곳에 나갈 수 없는 사정이 생기게 되었다.

1년쯤을 쉬다 보니 가정 경제가 어려워져 학교 급식소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하루에 6∼7시간 불 앞에서 전을 부치며 땀을 뻘뻘 흘렸고, 무거운 밥솥도 번쩍 들어야 하는 힘든 작업이었지만 기꺼이 즐겁게 했다. 나는 지금 뱃살 빼기 운동 중이었으니까. 이틀 만에 2kg이 빠졌으니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급식소에서 주 5일 근무를 하고, 주말에는 온가족이 함께 2시간씩 전단지 배포를 했다. 막연히 걷는 게 아니고 운동과 돈이라는 목적이 있으니 재미도 있었다. 때론 힘들고 기분이 상하는 일이 있었지만, "남들은 돈을 쓰면서 운동을 하지만 나는 돈을 벌면서 운동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냐"며 스스로에게 자꾸 용기를 불어넣었다.
  
2차 측정이 있던 날, 4.2kg 감량 판정을 받았다. 체지방량은 줄이고 근육량은 늘렸다며 운동을 참 잘했다는 칭찬도 받았다. 어깨가 ‘으쓱’ 나만의 비밀 병기를 가진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3차 측정 결과는 성에 차지 않았지만 그래도 체지방이 3kg 정도 줄어 총 5kg 감량에 성공해 뱃살이 줄었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면서 내가 느낀 점은 음식 섭취량을 줄이고 몸을 많이 움직이면 특별히 시간과 돈을 투
자하지 않아도 체중감량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이제 뱃살 빼기 대회는 끝이 났지만 나는 이제 시작이다. 낡은 이불 하나를 돌돌 말아 양파자루에 담고 빨랫줄에 매달았다. 그것이 나의 샌드백이다. 오른손 왼손 힘차게 휘두르며 나태해지려는 자신을 친다. 이렇게 긍정적인 사고로 열심히 노력하면 감량 목표치인 10kg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5. 세 아이와 함께 이뤄낸 감동의 뱃살 빼기 - 박혜영 주부

딸 둘, 아들 하나를 둔 결혼 5년차의 평범한 대한민국의 가정주부. 결혼 후 나도 모르게 늘어나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앉아서나 일어서서나 아기를 업거나 안고서도 5분이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는 엄청난 속도. 또 식사할 때 가족들이 먹다 남긴 생선, 고기 등 모든 음식을 깨끗이 비우는 알뜰함이다. 이뿐 아니라 아이들이 먹다 남긴 간식은 곧 나의 간식이 된 지 이미 오래. 옆으로 누우면 처지고 앞으로 누워도 들어가지 않는 나의 뱃살 덕분에 여자 옷 중 가장 큰 100사이즈도 작아 꼭 끼게 입거나 남자 사이즈 95를 조금 편안하게 입는 것이 습관화됐으며 운동복이 평상복이면서 외출복이었던 그녀의 생활들. 그랬던 그녀의 생활이 변했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지금부터 그 변화의 시작을 이야기하려 한다.
  
2005년 8월 13일. 재취업을 위해 올 초부터 계속 준비해 온 자격증 시험이 드디어 끝났다. 그러나 시험이 끝난 후 내 자신의 얼굴은 나도 몰라보게 통통한 호빵 같고 둥근 보름달처럼 빵빵하게 환했다. 시험 준비한다고 시간 나는 대로 의자에 앉아 있고, 아이들 재우고 공부하면서 야식으로 라면 먹고, 간식까지 먹은 탓인지 몸무게가 무려 73kg까지 늘어 있었다.
  
보건소에서 보내온 뱃살 빼기 대회 참가자 모집 공고를 보고 망설이는 마음으로 신청했다. "내 몸은 쓰레기통이 아니다"라는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랬다. 지금까지 나는 내 스스로 내 몸을 음식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있었다. 알뜰하다는 핑계 아닌 핑계의 이유로 남편과 아이 셋이 남긴 반찬은 물론 과자나 과일 등 먹고 남은 간식들은 배가 불러서 먹기 싫어도 버리기 아까워서 먹고 또 먹었다. 마치 음식 쓰레기통처럼.
  
교육을 받으며 밥 한 공기와 같은 열량을 가진 다른 식품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내가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먹었던 음식의 양이 이렇게 많은 칼로리를 가지고 있었다니. 한마디로 영양 과잉 상태와 영양 불균형 상태의 식습관을 가지고 생활해왔고, 엄마의 무지함에 나의 소중한 가족의 건강을 해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운동 교육 시간에 체계적인 운동 방법을 배우는데 몸무게가 많이 나가니까 일단 걷기 운동으로 시작하라면서 우리 몸이 지방량보다 근육량이 많으면 에너지 소비가 잘 되어서 살이 안 찌는 체질로 바뀐다는 말씀을 하셨다.
  
교육을 받고 나온 초심을 그대로 포기하지 않고 나의 체질을 바꾸어보고 싶어서 일단 스트레스를 안 받고 즐거운 마음으로 차근차근 습관을 바꾸기 시작했다. 먼저 요리시 생선은 튀김요리에서 찌는 요리로 바꾸었고, 볶음요리는 기름보다 물로 익히는 조리법을 선택했다. 또 지글지글 구운 삼겹살에 소주 한잔 대신 앞다리살 수육으로 요리하고, 밥 한 공기를 먹고 더 먹고 싶어도 한 공기로 끝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남은 음식은 과감히 버렸다. 이러다 보니 음식을 버리는 것도 아깝고 먹자니 살이 찌니까 자연히 요리할 때 음식의 양을 줄이게 되어 음식 쓰레기도 줄어들었다.

이렇게 요리 방법과 밥의 양과 간식과 과일의 양을 줄이니 문제는 화장실 가는 횟수가 적어져 변비가 생겼다. 그래서 운동하면서 수시로 물을 많이 마시고 저녁 식사 시간에 밥은 1/3공기, 나머지는 두부 반 모를 먹거나 다시마를 먹고, 아침저녁으로 공복시 감식초와 요구르트를 섞어서 먹으니 변비도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문제는 운동이었다. 이제 겨우 다섯 살, 네 살, 두 살 된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유모차에 막내 아들을 태우고 양쪽에 딸 둘을 데리고 걸어서 학생회관 모자방까지 가서 책을 한 시간정도 읽고 또다시 걸어서 집으로 왔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힘들다고 울면 유모차에 잠깐씩 아이 셋을 태우고 다녔는데, 날이 거듭되자 두 시간 걸리던 것이 한 시간으로 단축되었다.
  
일요일에는 막내를 업고, 두 아이의 손을 잡고 황방산 일원사까지 갔다 왔다. 딸들이 울면서 안아달라고 할 때는 괜히 엄마가 살 뺀다고 아이들 고생시킨다는 생각에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누구에게 맡길 사람도 없고 집에 놔두고 혼자 다닐 수도 없어서 강행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렇게 산을 오르다가 길에 떨어진 밤송이에서 알밤도 까먹고, 다람쥐와 청설모도 구경하면서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아이들도 등산 실력이 제법 늘었다. 또한 더욱 놀라운 일이 생겼다. 둘째 딸이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고 있어서 환절기에는 항상 가려움증으로 밤잠을 설쳤는데, 이제는 긁지 않을 만큼 깨끗한 피부가 되었다. 기름기를 뺀 음식과 야채 위주의 식단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복싱 다이어트 체육관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웠지만 몸을 시원하고 개운하게 해주어서 좋았다. 운동 전 충분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후 줄넘기 2라운드, PT체조 3라운드는 정말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꾹 참고 하다 보면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른다. 이때의 기분은 운동을 해본 사람만이 맛 볼 수 있다. 개운함으로 '아! 이 맛에 운동을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가벼워졌지만, 항상 아이들을 데리고 걷거나 등산을 하니 강도 높은 운동은 되지 않고 몸무게가 눈에 띄게 많이 빠지지 않아 아파트 상가에서 운영하는 에어로빅 센터에 매일 한 시간씩 꾸준히 다녔다.
  
드디어 보건소에서 중간 측정을 실시하는 날, 몸무게가 무려 7kg나 감량되었다. 너무 놀랍고 기쁜 마음은 뱃살빼기 참가자만이 맛볼 수 있는 행복감일 것이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고 하늘을 날아갈 듯한 기쁨이었다. 그러나 시댁에 일이 있어서 보름간 머무는 동안 다이어트 작전은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몸무게는 고작 2kg 정도 늘었지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려고 하니 몸이 무거워져 있었다. 시댁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여기며 운동과 식이요법을 포기한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뱃살 빼기 대회에서 마지막으로 측정한 몸무게는 총 9kg 감량, 체지방은 6.2kg이 빠졌다. 또한 기초대사량이 좋아져서인지 이유 없이 가슴을 압박하던 흉통도 사라졌다.
  
이번 기회에 내가 겪었던 나의 몸의 변화들을 지켜보면서 뱃살, 즉 비만도 나와 함께할 평생친구라고 생각한다. 비만, 이 친구는 아주 정직하고 나의 식습관을 그대로 나타내준다. 이 친구를 모르고 지내다가 더 큰 병, 더 큰일이 닥치면 이미 때는 늦을 것이다. 나는 일찍 이 친구를 알아서 삶이 변했고 아름다워졌다. 아름다움을 위해, 그리고 재취업을 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유모차를 밀고 예쁜 두 딸과 걷는다.

* 위 글은 25인의 수기 모음집「뱃살 공주들의 반란」중에서 발췌한 글로 레이디 경향에서 전제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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