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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년을 맞은 ‘광장’ 발행인 이윤낙 동사장 [110호][이달의 인물]
2007-01-24 16:16:57


10주년을 맞은 ‘광장’ 발행인 이윤낙 동사장

“독자들의 성원없이 오늘의 ‘광장’ 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광장’이 해 온 것처럼 한겨레사회에서 봉사하는 역할을 담당하겠습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던가. 이윤낙 동사장(51)은 기자, 편집, 영업, 관리 등 일인다역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10년 동안 잡지사를 경영해오고 있지만 아직도 그 자신에 대해서는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주변사람들은 그가 최근 몇 년간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근엄함을 벗고 온화한 얼굴로 변한 그를 매일 만나지만 인터뷰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 10년간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았다.
                                                                    
취재 박정미 jungmip@hotmail.com  /  사진 이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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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 광장과의 인연과 삶

그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어려운 환경속에서 고학으로 야간대학을 다니며 교직을 이수, 상업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사직한 후 타자, 주산, 부기, 컴퓨터, 미술, 입시학원에 이르기까지 범위를 넓혀 10여년간 학원을 운영했었다. 교육사업에만 종사하던 그가 천진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3년 1월 선배가 경영하는 모 전자회사 총경리로 진출하면서였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한편으로는 학원 경영을 한편으로는 회사를 경영하는 생활을 하면서 천진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96년 천진한국상회 2대 강재형 회장 재직 당시 상회 회지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있었고, 생활정보지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상회에서는 경제, 생활, 유학 정보 등을 아우를 수 있는 회지 광장 발간을 기획하게 되었다. 당시 5호까지 발간된 상회 회지는 그 후 관리의 어려움으로 1년 동안 휴간되었고, 98년 당시 친분이 있던 이성권 사무국장의 지속적인 권유로 광장의 편집을 맡게 되었다. 당시 처음 진출했던 회사를 사직하고 모 화장품 회사에 근무하던 그는 교민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임했다고 한다. 그러다 IMF로 근무하던 회사가 철수하면서 전문적인 잡지사의 편집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후, 외자법인인 다운복장유한공사와 다운목재유한공사, 내자법인인 다운광고유한공사, 아름다운치과병원, 신교영어학원 등을 설립하여 경영하는 한편 천진한국국제학교 학부모회장과 재단이사를 역임했고, 한국상회 사무국장과 초대 한인회 상임부회장으로 한인회 출범의 산파역을 담당했으며, 현재 한국학교 운영위원장과 천진 CBMC(기업인모임) 회장으로 또 엘림한인모임 시무장로 등으로 봉사하고 있으며, 조선족 어린이를 돕는 등 천진 한겨레 사회를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광장 10년, 그 시간 동안의 좌절과 희망

광장은 천진교민의 생활정보지로는 최초였다. 창간호 28페이지에서 계속 증가해 갔고 광고하는 업체도 늘어났다. 경쟁사도 생겼다. 천진에 온지 얼마 안되는 교민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일지도 모르는 잡지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광장’의 승승장구는 경쟁지의 공격 타겟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왜 ‘광장’이 한국상회의 회지여야 하냐는 타 잡지사 및 여러 사람들의 공격으로 ‘광장’은 상회 지정 정보지로 전환해야 했으며, 이후 모든 정보지는 상회에 등록하는 등록지가 되었다.

그 후에도 ‘광장’에 대한 시기는 끊임이 없었고, 결국엔 다방면의 투서로 공상국, 출판국 등 5개 정부기관에서 조사, 압수를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 그는 광고회사 설립을 결정, 150만 위안의 자본금을 가지고 현지인과 합작으로 천진다운광고유한공사를 설립하게 되었으며, “광고인쇄물발행”에 관한 허가를 천진시공상국으로부터 얻게 된다. 이어서 광고 잡지의 성격상 기사, 정보 등은 실을 수 없는 점을 극복하기 위해 북경의 ‘경제생활’잡지사와 전략적 제휴를 함으로 교민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합법적으로 게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굴곡 있는 광장과 그의 이야기 중에,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물어보았다.

2001년 3월 대통령선거 전이었다. 당시 그는 천진한인회 상임부회장의 자리에 있었고, ‘지역감정을 없애야 한다’는 주제의 기사를 한국 인터넷 신문에서 발췌하여 ‘광장’에 싣게 되었다. 경상도 출신의 한 기자가 쓴 그 글은 ‘이유 없는 지역감정 주의’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며 지역감정을 없애야 한다는 주제를 펼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는 광장을 질시하던 사람들에게 호재가 되었고, 내용 중 지역감정에 치우친 일부 사람들의 ‘인용문’을 역으로 인용하여, ‘광장은 천진에 있는 한국교민들의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대사관 및 한인회, 상회, 각 언론사, 청와대, 당시의 평민당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공안국, 출판국, 공상국 등 천진시 정부에 까지 투서를 보내고 다른 정보지에도 비난하는 글을 게재하는 등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 동사장은 이 일로 인하여 정신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좋은 의도로 게재한 내용이었지만 그는 이 일이 발생한 6개월 후에 결국 상임부회장을 사임하였고, 광장 10년사에 가장 안타깝고 억울하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을 물어보았다. 당연히 올해 2월 24일 열렸었던 ‘광장 100호 기념행사’였다. 350여 명의 독자들과 광장직원들, 각계 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100호 행사는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며 지난 아픔들을 잊고 다시 새로운 출발을 기약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마디가 되었다고 한다.


문득 생각나는 ‘그 때 그 시절’ 이야기들

‘10년 동안 광장의 발전상을 그래프로 그린다면?’이라는 질문에 처음엔 급격한 성장을 그 후부터는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광장’의 상승곡선을 그리기가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편집인을 맡고 나서 처음엔 편집, 광고영업, 취재, 광고비 수금에 이르기까지 모두 혼자서 도맡아 해야 했다.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고, 한번은 3박 4일 동안 한숨도 자지 못하고 마감을 맞추기도 하고, 손에 링거 주사를 꽂은 채 컴퓨터 앞에서 편집을 해야 할 때도, 피로와 스트레스로 입주변이 부어서 마스크를 쓴 채로 작업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이 에피소드는 마감에 임박해 우는 소리를 하는 편집부에서는 동사장님으로부터 가끔씩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때 그 시절’에 비하면 너무나 편안하고 좋은 환경 속에 일하는 것이지만 그런 열정은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데이터 베이스가 부족하거나 거의 없던 그 당시, ‘광장’은 천진의 한국 업체 전화번호를 싣기 위해 매 업체를 한 집 한 집 다니면서 조사해야 했다. 이윤낙 동사장은 당시 함께   고생했던 광장식구인지라 이름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며, 유학생으로 광장에서 근무하던 김재록씨 이야기를 꺼내 당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그 작업을 일일이 해주었다고 하면서 지난날 동고동락했던 광장 직원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고 있었다.


광장의 철칙, ‘발행일은 꼭 지킨다’

이런 그의 에피소드의 근원은 단 하나, ‘발행일은 꼭 지킨다’였다. 발행일은 절대 어기지 않는 그의 철칙하에 10년 동안 단 한번도 발행일을 어긴 적이 없다고 그는 자랑스럽게 말한다.(예전 15일 발행에서 현지 연휴가 주로 월초에 있는 관계로 5일 늦추어 현재 20일 발행으로 변동했음)

평소 ‘약속, 신용’을 우선으로 하는 그의 성격도 있지만, 독자와의 약속, 광고주와의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어기지 않는 그의 ‘신용’제일로 인해 ‘발행일 20일’은 어느새 ‘광장’의 ‘약속’이 되어 있었다. 지금의 그가 있었던 것도, 지금의 광장 10주년도 모든 것이 ‘신용’을 철칙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자신있게 말한다.

사실 잡지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잡지사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채산성을 맞추는 것이 가장 힘들다. 문화사업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업의 영역이 좁은 반면 무가지이기 때문에 모든 경비를 광고비에 의존해야 한다’라고 그는 그 어려움의 이유를 말한다.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물론 이 동사장이 믿고 있는 신앙의 힘이었고 도움이었다.  그리고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세 명을 꼽았다. 처음 ‘광장’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지지해 준 이성권씨, 그리고 함께 ‘광장’을 합작할 수 있게 된 13년 우정의 무충문 고문, 그리고 옆에서 항상 묵묵히 기도로 그를 뒷받침해주는 아내.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인 그여서인지 화려한 말로 그들을 수식하지는 않았지만 고마운 사람으로 이 세 사람을 바로 꼽을 수 있는 것을 보니 평소에도 주변의 고마운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항상 담아두고 있는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광장’ 직원에 대해서도 언급을 잊지 않았다. 동사장으로서 직접 칭찬은 하지 않지만 밖에서 ‘광장’ 직원의 칭찬을 들으면 남에게서 자식 칭찬을 들은 것처럼 뿌듯해 진다고. 예의 바르고 똑똑하며 착하다는 영업부장에 대한 칭찬을 비롯해 책임감 있는 편집부에 대한 고마움 등 직원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 자신에 대한 견해도 빠지지 않았다.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부드러워져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항상 다짐을 한다고. 예전엔 ‘카리스마’ 지금은 ‘덕’으로 변했다고 농담처럼 얘기하는 그였지만 직원들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직원들과 나이차를 줄이고 세심한 부분까지 더 챙겨줄 수 있는 총경리가 있어 든든하다며 그 옆에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총경리에 대한 칭찬도 빠지지 않았다.

교민사회의 선배로서…

4만 여명의 한국인이 사는 천진, 그 역시 이곳에서 14년을 살아온 1세대이다. 4만 이라면 한국의 시급 인구량인데 천진의 한국인사회는 그에 합당한 서비스나 복지를 누릴 수 없는 상황이다. 때로는 중국법에도 한국법에도 호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북경, 상해, 청도, 광주, 심양, 성도, 서안 등에는 영사관이 있지만 천진은 북경과 인접해 있어서 영사관도 없고 한국 정부의 지원 및 보호가 상대적으로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재천진 한국인회와 상회가 있지만 무엇보다 교민들의 참여의식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그는 말한다. 그 참여의식의 부족이 소외된 사람, 피해자를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으며 특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 주재원, 유학생과 영세업자들은 그 속에서 보호받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특히 천진의 한국 국제학교 문제에 대해 많은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처음 천진한국국제학교 설립을 기안한 당사자로서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천진한국국제학교는 자녀 교육문제로 떨어져 생활하던 그와 가족들을 함께 살게 해주었다.  학교가 설립되자 곧 딸을 데려와 입학시켜 지난해 고려대에 입학하는 경사를 얻게 해 준 것도 한국국제학교가 있었기에 가능한 기쁨이었다고 고마워한다. 지금까지 교민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모금 운동을 해왔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현시점에서 학교신축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학교당국과 학부모회, 운영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학교 신축을 위한 모금 운동을 강력하게 구체적으로 전개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까지 광장이 그랬던 것처럼 한겨레사회에서 봉사하는 역할을 담당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10년이라는 시간을 항상 순탄하게 걸어올 수는 없었지만 그는 그 순탄하지 않은 길을 계속해서 걸으려 하고 있었다. 그가 천진에서 쌓아온 결과를 바탕으로 교민사회와 함께 나누고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는 것은 비단 그 뿐만 아니라 모든 천진 교민들이 가져야 할 생각이 아닌가, 그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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