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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남, 완소남’ 다 필요없다. 끝까지 우리곁에......[114호]
2007-04-20 15:36:15

훈남, 완소남 다 필요없다.

끝까지 우리곁에 남아 있을 수 있기를 바랄뿐

 

인터넷에서 훈남, 완소남이라고 이름을 내걸고 있는 연예인의 비슷비슷한 얼굴을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그들을 구분해야 하나 가끔 고민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그 걱정을 덜어주는 것이 있다면 그 많은 ~~들은 한꺼번에 활동하지 않는다는 것. 이 사람이 잊혀질만 하면 다시 그와 비슷한 느낌의 사람이 나타나 그 자리를 메워준다. 세상이 공평해서일까 아니면 그들끼리 시기를 맞추어서 나오는 것일까. 국민배우 안성기 아저씨처럼 언제나 넉넉한 웃음으로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연예인, 젊은 연예인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렇게 여전한 모습으로 아니 세월이 자연스럽게 드리워진 얼굴로 남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객원기자 혜원 js65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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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천왕 시절 가장 눈에 안띄던 그를 떠올리며

 

중국 연예계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당시 사대천왕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 느와르 장르의 영화들이 한국 비디오가게 한 켠을 당당히 자리잡고 있을 당시 기자의 친구가 물었다. 너 사대천왕 알어? 여명, 유덕화, 곽부성 그리고 누구더라? 사대천왕을 외우고 다닐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름을 들으면 어느 정도 얼굴이 떠오르기는 했다 하지만 마지막 한 명은 늘 3명의 얼굴에 가려져 도통 기억이 안난다. 그랬다. 홍콩영화가 비디오로 한국에서 범람하던 그 시기에 가수로 데뷔하여 영화출연이 잦지 않았던 사대천왕의 한 명인 장학우(张学)를 알아보는 한국사람은 많지 않았고, 심지어는 성룡과 혼동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의 노래실력은 사대천왕 중에서는 최고로 꼽혔고 그는 거선(歌神)으로 자리잡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무역회사와 항공회사의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하던 그, 1984년 단조로운 직장생활을 박차고 나가 홍콩 18구 아마추어노래자랑에 참가했다. 만 여명 참가자 중에서 1등을 수상할 정도의 모래알 속의 보석과 같은 인재였지만 당시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장국영과 담영린의 그늘에 가려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던 그는 현실에 좌절할 수 밖에 없었고 한동안 술에 의존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다른 가수들과 함께한 어느 공연장에서, 그가 무대에 오르자 들려오던 관중들의 야유소리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외모 지상주의, 우상주의로 스타가 되지 못하는 열등감은 접어 버리고 그는 그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술을 끊고 그가 가장 자신있는 노래라는 것에 더욱 집중했다. 그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가창실력은 어느새 깊은 매니아층을 형성하기 시작했으며 가랑비에 옷이 젖듯 그의 목소리는 현지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젖어들었다.

 

평상심과 가정 그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

 

20여 년간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지금까지 롱런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기자는 평상심(平常心)을 꼽고 싶다. 그의 평범한 외모에서 풍기는 편안한 인상도 그렇지만 그는 어디에 가든 튀려고 발돋움 하지 않는다. 발돋움이 지나치면 다리에 쥐가 나는 법, 그는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성공의 도구를 다른 곳에서 찾지 않았다. 그는 세상의 평판에 일희일우(一喜一) 하지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노래부르는 일을 계속 했을 뿐이었다. 멀쩡한 사람을 어지럽게 비행기 태우다가도 어느 순간 내동댕이 쳐버리는 냉혹한 연예계였지만 데뷔 초기시절의 교훈으로 다져진 그의 평상심은 그의 팬들마저 평상심으로 그를 꾸준히 지지하도록 만들었다.

 

1996년 그가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을 즈음 그는 영화배우 나미미와 결혼에 골인했다. 10년간의 연애, 그 시간이 연예계의 호사가들에게는 참 지루한 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성격에 맞게 그는 마라톤처럼 꾸준히 달려왔고 그 결실을 맺었던 것이다. 그가 무명시절 함께 출연한 <痴心的我>라는 영화에서 둘은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고, 장학우가 보내온 어려운 시간들을 나미미는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며 함께 걸어왔다. 결혼 10년을 갓 넘어선 그, 지금은 사랑스런 두 딸의 아버지로서 가끔 TV등에 보도된다. 첫 딸을 낳고 나서부터 그의 활동은 뜸해졌지만 팬들의 이해심도 그만큼 넓어졌다. 장학우가 왕성한 활동을 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장학우가 두 딸과 함께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역시 팬들의 소망, 그래서 팬들의 장학우에 대한 요구도 관대해진 것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멈추지 않는다

 

왕년의 사대천왕도 이제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었다. 그의 노래 인생도 이제 20년을 넘어섰다. 젊은 가수들의 활동에는 비할바가 아니겠지만 그는 그의 꿈을 향하여 여러 가지 도전을 아끼지 않고 있다. 2002년 처음 시도한 세계순회공연, 올해 다시 도전을 시작하였다. 정월 초하루 라스베가스 공연을 선두로 시작한 두 번째 세계 투어, 현재 중국에서 연이어 열리고 있는 콘서트는 매일 매진 상황이다. 조용히 뜸을 들인 장학우 폐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의 꿈은 70살 까지 계속 노래를 하는 것이란다. 딸을 낳고 나서는 두 딸과 함께 70세 까지 노래를 하겠단다. 그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그, 그 꿈을 위한 노력을 위해 그는 느린 걸음이지만 한시도 멈추지 않았고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다. 훈남완소남도 아니지만 그의 꿈이 노래인 한 우리는 언제까지고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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