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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야성 단둥 맞은편엔 칠흑에 잠긴 신의주가
2007-06-26 11:17:23

중국 단둥은 압록강을 경계로 한반도 서쪽 땅 끝 신의주와 마주하고 있는 작은 도시다. 선양에서 단둥을 돌아보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행장을 차리고 길을 나섰다.

단둥까지는 약 250㎞. 4차선 고속도로로 올라선 자동차가 거침없이 달릴 수 있을 만큼 오가는 차량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통행료가 한국과 비슷한데 현지인들에게는 너무 비싸 웬만해서는 이용하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관광 상품화한 압록강 철교
 
선양을 출발한 지 2시간 30여 분. 단둥 톨게이트를 지나자 한자로 '압록강단교'라고 쓰인 이정표가 눈에 띈다. 압록강을 만나려면 단둥 시내를 가로질러야 한다. 단둥의 첫인상은 놀라움이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낙후된 변방에 지나지 않았으나 국가 통합을 위해 구석구석 개발 정책을 펼치는 중국 정부의 노력에 힘입어 개발이 한창인 까닭이다. 아직은 인구 75만 정도의 작은 도시이지만 대형 크레인이 스카이라인을 형성했고, 그 아래에는 콘크리트 건축물이 무서운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압록강을 빨리 만나고자 하는 욕심에 중심가를 피해 지름길을 택했다. 좁은 길을 몇 블록 지나니 눈앞이 환히 트인다. 압록강이다. 너비는 한강과 비슷해 보였다. 강물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듯했다.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다리는 두 개 있다. 하나는 한국전쟁 때 끊긴 압록강철교(중국명 야뤼지앙두안챠오·鴨綠江斷橋)와 다른 하나는 양국의 교역로로 이용되는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이다.
 
압록강철교의 원래 길이는 944m. 한반도와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을 연결하는 통로로 1908년 착공, 연인원 5만 명을 동원해 3년 만에 준공됐다.

중앙에 철로를 부설하고 양쪽에 보도를 깔았다. 1932년 통행자만도 연간 260만 명에 이를 정도였던 다리는 그러나 한국전쟁 때 중국군이 한반도로 넘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미군의 공습으로 북한 측 부분이 파괴돼 교각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철교에 오르려면 입장료(20위안)를 내야 한다. 적지 않은 금액이다. 아무리 역사적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돈을 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재주는 ×이 부리고, 돈은 ××이 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다리에 올라서니 깨끗하게 단장된 철교가 신의주를 향하고 있다. 최근 한국인들이 많이 찾아서인지 교각은 깨끗하게 칠해져 있고, 길도 말끔히 정돈돼 있었다. 철마가 달리던 길도 모두 인도로 변했다.


걸어서 끝까지 가 보니 폭격에 휴지 조각처럼 찌그러진 철교가 그대로 보존돼 있고, 그 뒤로는 북녁 땅이 손에 잡힐 듯 들어왔다. 강물은 국경을 넘나들며 자유로이 흘러가고 있는데 발길은 더 이상 이어 갈 수 없었다.

■뛰는 단둥, 제자리 걸음 신의주
 
압록강을 유람하는 배는 북녘 땅 부근까지 운항한다. 유람선도 좋지만 작은 모터보트(1인당 40위안)를 이용하면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가능하다.
 
압록강단교 바로 아래에는 약 10여 개의 유람선 업체가 영업 중이다. 이용객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업자의 설명이다. 또한 강변에는 약 20여 개의 한국 식당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구명 조끼를 입고 신호를 보내자 보트는 선착장을 나섰다. 끊어진 철교 아래를 한 바퀴 선회한 보트는 방향을 남쪽으로 바꿨다. 강 한가운데에서 잠시 배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 중조우의교로 이어진 강 양안을 번갈아 바라봤다.


왼쪽은 하루가 다르게 스카이라인을 바꾸는 단둥, 다른 한쪽은 ….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었다. 정권의 판단과 능력이 불과 두 곳의 운명을 이렇게 갈라놓은 것이다. 특히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는 단둥과 칠흙 같은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신의주의 모습은 두 도시의 오늘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평안북도 도청 소재지이자 북한 최대의 공업도시 신의주. 압록강과 맞닿은 이곳에는 굴뚝이 적지 않게 보이지만 연기 나는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단둥이 신의주에 의존해 삶을 연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거꾸로 신의주가 단동에 기대 명맥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이다.
 
보트는 신의주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강가에는 두 개의 커다란 건물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하나는 하얀 콘크리트 건물로 사이다 공장이고, 다른 하나는 압록강각이라 쓰인 현판이 붙은 2층 기와집으로 냉면집이다. 둘 모두 폐쇄된 듯 을씨년스러움만 가득하다.
 
두 건물 앞 강변은 콘크리트로 잘 정돈돼 있었는데 북한 주민들이 빨래하거나 미역 감는 모습, 연인인 듯 자전거를 세워 놓고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 등이 더러 눈에 띄었다.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조선소인 듯한 공장이 나타난다. 가까이 다가가 카메라를 대자 200㎜ 렌즈에도 경계 중 잡담을 나누고 있는 북한 군인과 그늘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주민들의 표정이 담긴다. 낡고 작은 배 위에서 작업 중인 모습도 있다. 이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듯하다.
 
불과 10여 분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든 것이 타임머신을 타고 2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시작된 압록강은 서로 다른 두 세상을 가르며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중국에서 가장 큰 석회암 동굴 번시수이둥

선양에서 단둥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이용해 약 40분 정도 가면 번시(本溪)IC에 이른다. 여기서 다시 20분 정도 동쪽으로 달리면 위징산(玉京山)이 나타난다.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 산은 그러나 중국에서 가장 큰 석회암 동굴을 품고 있다. 번시수이둥(本溪水洞·사진)이라 불리는 이 동굴은 전체 길이가 3㎞에 이르며, 동굴 바닥에 물이 흐르고 있다.
 
직경 20m에 이르는 입구를 지나 잠시 걸으며 종유석을 감상한 뒤 배를 타면 동굴 유람이 시작된다. 전기모터 보트 30여 척이 운행하고 있다. 한여름에도 추위를 느낄 만큼 서늘해 배를 타기 전 무릎까지 내려오는 보온용 옷을 무료로 대여해 주지만 따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물의 깊이는 2~7m이고, 굴의 평균 지름은 약 10m. 큰 곳은 직경이 약 40m에 이르는 곳도 있다. 기기묘묘한 형태의 종유석과 석순 등이 감탄을 자아내지만 훼손의 흔적이 적지 않다. 배는 동굴 끝까지 갔다 오며, 소요 시간은 약 40분이다. 주차장에서 동굴 입구까지는 약 1㎞ 떨어져 있다. 셔틀용 전동 카트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동굴 관람료(셔틀 카트 이용료 포함)는 140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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