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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눈물[162호][광장칼럼]
2011-04-27 12:03:45

아버지의 눈물

곽대중 <광장> 편집장

1.
눈물의 온도는 어떻게 될까? 체내에서 배출되니 36.5℃일까? 차가운 눈물도 있을까? 눈물을 말할 때 대체로 ‘뜨거운 눈물’이라고 표현하지 ‘차가운 눈물’이라고 하면 왠지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눈물의 무게는 어떻게 될까? 가벼운 눈물도 있을까? 가슴 속에 가득했던 기쁨과 슬픔, 분노와 정의를 응축하였으니 저울로 표시되는 무게와는 다른 무엇이 담겨있으리라.

<광장> 편집장을 맡아본지 5개월이 지났다. 덜컥 편집장의 역할을 수락한 것을 후회했던 날도 솔직히 있었지만, 고마운 일이 더욱 많았다. 무엇보다 각자의 생활터에서 묵묵히 땀흘리며 살아가는 수많은 천진 교민, 교포분들의 아름다운 사연을 들을 수 있어 기쁘다. ‘기자’의 역할로써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그냥 일반적인 장사를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마주보고 앉아서 몇 시간동안 상대방의 인생을 들춰보고 속심을 따져보는 일이다. 기자만의 특권이자 직업적인 보람이다. 비록 <광장> 본연의 성격은 광고잡지이지만,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는 중이다.

인터뷰를 하다보면 갑자기 상대방이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당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호 <광장>에 소개한 <하림 한식요리>의 강수점 사장도 그랬고, 기사로 담지는 않았지만 지난 달 어느 은행 지점장님을 인터뷰했을 때도 그랬다. 시종 점잖고 강인해 보였던 분이 외국에 유학간 딸아이의 이야기를 하면서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데, 가슴이 찡해 함께 울었다. 연초에 만났던 어느 기업인 또한, 자신이 중국에서 사업에 실패하여 힘들 때 군복무중이었던 아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한참을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면회 한 번 못갔다는 것이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금덩어리보다 무거운 아버지 어머니의 눈물이다.

2.
내 핏줄을 이어받은 갓난 살덩어리를 처음으로 끌어안았을 때의 감동을 어찌 말로써 표현할 수 있을까? 부모가 되어본 사람들은 지금 필자가 어떠한 느낌을 전하려고 하는지 이해될 것이다. 아빠가 되고 나서, 엄마가 되고 나서, 그때부터 인생이 바뀐다. 삶의 목표가 달라진다. 나를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자식들을 위해 사는 삶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을 위해 살라’고 당당한 자유주의를 이야기하지만, 우리 동양인들의 사고에는 아직도 자식을 위해 남은 생을 헌신하는 것을 부모의 당연한 도리로 여긴다. 그래서 자식의 이야기를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것이다.

부모의 마음은 그러할 진대, 흥청망청 살아가는 일부 청소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린다. 며칠 전 어느 호프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천진으로 유학을 온 듯한 학생들 몇 명이 모여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스무 살은 되어 보이니까 당연히 ‘술 한 잔’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내가 너무 오지랖이 넓은 탓일까,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대화의 소재가 심히 귀에 거슬렸다. 용돈 투정들이다. 어떻게 하면 용돈을 더 타낼 수 있는지 그 수법(?)을 주고받는다. 쟤네 부모들은 저러는 걸 알까? 주먹을 부르쥐고 일어서 한마디 거들까 하다가 조용히 마음을 돌린다. 생각해보니 20년전 내 모습이 그랬다. 전공서적 가격 부풀리기, 무슨무슨 회비 내야 한다고 둘러대기, 무슨무슨 물건이 없으니 친구들 사이에 쪽팔려 죽겠다느니……. 세월이 바뀌어 지금 학생들은 약간 더 고수(?)가 되어있겠지만, 어쨌듯 나도 그렇게 자랐다. 부모가 그 돈을 어떻게 벌어오는지는 알지도 못하면서.

물론 모든 학생들이 이러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게 유학생활을 꾸려나가면서도 해맑고 바르게 살아가는 학생들 또한 많이 보았다. 나이는 필자보다 훨씬 어리지만 존경의 인사를 건네고 싶은 보배들이다. 그런 친구들을 볼 때마다 ‘저런 사람들이 반드시 성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할 텐데’하면서 행복을 빌어준다.

3.
부모가 되어야만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부모님이 통장으로 보내주신 그 용돈은 어떠한 아픔과 슬픔을 견디면서 보내주신 것인지 생각해보았나? 때로는 모욕을 당했을 것이다, 비굴해지기도 했을 것이다, 때로는 너무도 몸이 아파 쉬고 싶은 날도 있었을 것이다, 때로는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싶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래도 지친 몸을 이끌고 달콤한 새벽잠을 물리치며 일터로 나갔을 것이고, 직장과 일터에서 모욕을 삼키며 억지로 웃었을 것이며, 맛있는 음식의 유혹도 뿌리쳤을 것이다. 누구 때문에?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생각하며 우리의 부모는 그렇게 일하고 있다.

살다보면 부모에게 섭섭한 일도 생겨나곤 한다. 하지만 내가 약간 섭섭할 때에, 부모는 속으로 피눈물을 삼켰을 것이다. 자식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야속하다 느끼기도 하고, 더욱 잘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초라해 보였을 것이다. 내 심장을 떼어내어 건네주어도 아깝지 않은 자식이 고생을 하는 모습에 가슴은 미어졌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서 꺼이꺼이 울었을 것이다. 필자가 인터뷰했던 분들의 눈물의 의미가 바로 그러하였을 것이다. 부모의 그런 마음을 이해하는 것도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에야 정말로 ‘이해’에 다가갈 수 있다.

4.
지난 달, 친하게 지내던 후배 녀석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급히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보름 만에 돌아온 녀석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늘 헤헤 웃는 표정이어서 ‘헤죽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던 녀석이었다. 짠한 마음에 술집으로 불러냈더니 손님 한 분이 더 오실 거라며 종업원에게 소주잔을 하나 더 가져오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연거푸 소주잔을 들이켰다. 한 시간이 넘게 흘러도 그 ‘오신다던’ 손님은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고개를 푹 숙이고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녀석의 어깨가 심하게 흔들렸다. 꺼이꺼이 울음소리가 술집 안에 퍼졌다.

자리에서 일어설 때 후배가 말했다. 하나 더 시켰던 그 술잔은 아버님을 위한 술잔이었다고. 아버지께 전화를 드릴 때마다 “막내야, 네가 따라주는 술 한 잔 마시고 싶구나”라는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신 것이다. 이제와 후회가 된다고, 후배는 말끝을 잇지 못했다. 그날 밤, 우리의 옆자리에 아버님이 찾아와 조용히 앉았다 가셨을 것이라 위로를 삼았다.

한국에서는 5월을 ‘가정의 달’이라 부른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나란히 이어져있다. 불효막급하기 그지없는 필자가 감히 꺼낼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비단 5월만이라도 부모님께 좀 더 자주 전화도 드리고, 편지로 쓰고,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보자. 뒤늦게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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