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글마당

광장칼럼
전체글 수: 79
하루에 3시간씩 10년 동안만![164호][광장칼럼]
2011-06-22 18:27:53

하루에 3시간씩 10년 동안만!

곽대중 <광장> 편집장

한국에 있을 때 몇 개월간 중국어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새벽 6시30분에 시작하는 반이었는데 1시간은 독해와 문법, 다음 1시간은 회화와 발음교정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8시30분에 수업을 마치고 부리나케 회사에 달려가면 정확히 9시 출근시간이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뿌듯하게 부지런히 살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중국어 초급 시작반을 함께 다닌 동학(同學) 가운데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이제 막 직장에서 은퇴를 하였다니 예순은 족히 넘어 보이는데 그 연세에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새벽반에 등록하셨다. 늘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나오시기에 이유를 여쭈니 "오래된 습관 때문"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냥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한자를 많이 아셔서 독해에는 문제가 없으셨지만 솔직히 발음이 엉망이셨다. 특히나 한자어를 한국식으로 읽는데 익숙하여, 예컨대 하오뿌하오(好不好)를 호뿌호 식으로 읽어 강의실을 종종 웃음바다에 빠뜨리기도 하셨다.

어느 날 있었던 일이다. 여러 가지 성조가 결합된 단어를 반복하여 연습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날은 '2성+1성'의 시간이었나 보다. 한 사람씩 일어나 인쇄물에 적혀있는 단어들을 읽어내려가다가 선생님이 "팅하오(挺好)!"를 외치면 다음 사람으로 순서가 넘어갔다. 드디어 어르신의 차례였다. 떨리는 목소리로 한 단어씩 읽어가는 도중 '핑안(平安)'에서 발음이 꼬였다. 선생님이 '짜이라이(再来)'를 외치셨다. 다시 '핑안'을 읽는데 발음이 더 이상해졌다. 우리가 들어도 발음이 웃겼다. 여기저기서 킥킥 웃음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또 다시 '짜이라이!' 그래도 이상했다. 그렇게 너댓 번 은 '짜이라이'가 계속되다가 아예 선생님을 따라 '핑' 그리고 '안'을 한 글자씩 따로 읽어보았다. 하나씩 읽을 때는 정확하였는데 이것이 다시 '핑안'으로 합쳐지면 엉망이 되었다. 박장대소가 터져나왔다. 어르신의 얼굴이 귓불까지 붉어졌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몇 분 동안 괴상한 핑안, 핑안이 반복되었다. 강의실 분위기가 점차 썰렁해졌다.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학원을 통틀어 최연장자이신 분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우리도 한 사람 때문에 아까운 수업시간이 흘러가고 있으니 짜증이 나고, 어르신께서도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손주뻘 되는 동학들 앞에서 부끄럽기도 하였을 것이다. 결국 어르신은 끝까지 핑안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선생님은 내일 다시 해보자고 다음 사람에게 순서를 넘겼다.

그날 점심 무렵,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식사를 마치고 우연찮게 학원에 들렀다. 우리가 공부하는 강의실 옆을 지나가는데 텅 빈 강의실에 혼자 앉아있는 사람이 보였다. 조용히 뒷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어르신'이 었다. 허리를 숙이고 무언가를 열심히 읽고 계셨는데, 바로 '핑안'이었다. 핑안! 그것만 죽도록 반복해 읽고 계시는 것이다. 눈물이 핑 돌았다.

지인들과 중국어 공부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늘 그 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순을 넘기신 나이에도 그렇게 열심히 새로운 도전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나이가 이제 갓 마흔, 쉰 정도에 이른 분들이 "이 나이에 무슨 중국어 공부를..."이라고 하실 때마다 속으로 한숨이 나온다. 예순은 청춘이고, 여든쯤은 되어야 은퇴의 나이인 것이다.

중국어의 병음(倂音) 체계를 창시한 언어학자 저우요우광(周有光) 선생은 올해 만 106세이시다. 84살에 은퇴하였으며, 은퇴한 후로도 15권의 책을 썼다. 그중 4권은 100살 이후로 펴냈다. 최근에는 중국의 어느 잡지에 칼럼 연재를 시작하여 화제가 되었고,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를 만들어 근황을 전하고 있다. 장수하는 노인의 유별난 정력이라고 그냥 신기하게만 여길 사람도 있겠지만 언젠가 중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늘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끊임없이 도전하였던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대답하였던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도전이야말로 활력의 원천이다. 늙는다고 도전하지 않으면 더욱 늙게 되고, 늙어서도 도전을 계속하면 도리어 젊어지는 법이다.

최근에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한국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다가 김용택 시인이 게스트로 출연한 새벽의 음악방송을 듣게 되었다. 대화의 말미에 "무슨 일이든 10년 동안 집중을 하면 그 분야에 전문가 수준이 된다"며 자신이 마흔을 넘겼을 때에야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였던 이야기를 하였다. 전혀 틀림이 없는 말이다.

세계적인 컨설팅 전문가 말콤 글래드웰의 책 '아웃라이어'에는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무슨 일이든 1만 시간을 투자하면 그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1만 시간이라면 하루에 3시간씩 10년 동안 중국어 공부를 하면 세계 최고의 중국어 실력을 갖게 될 것이다. 굳이 중국어가 아니더라도, 컴퓨터가 되었든 어떤 스포츠 종목이 되었든, 혹은 특정한 학문분야가 되었든, 하루에 3시간씩 10년 동안만 꾸준히 투자를 하면 세계 제일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마흔에 시작하여도 쉰이면 달성할 수 있는 일이다.

핑안! 나는 지금도 중국어로 이야기를 하다가 '핑안'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대목에서는 늘 그때의 어르신 존안이 떠오른다. 지금쯤 칠순을 넘기셨을 것이다. 어디에선가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계실 것이다. 변함없이 핑핑안안(平平安安)하시길 하늘에 기도한다.

추천 : 0
코멘트 0
번호
제목
글쓴이
일자
추천
79
2016-02-29
0
78
2015-01-23
0
77
2015-01-07
0
76
2014-04-03
0
75
2014-04-03
0
74
2014-04-03
0
73
2014-04-03
0
72
2014-04-03
0
71
2014-04-03
0
70
2014-04-03
0
69
2014-04-03
0
68
2011-08-02
0
67
2011-06-22
0
66
2011-06-22
0
65
2011-04-27
0
64
2011-04-27
0
63
2011-04-07
0
62
2011-04-07
0
61
2011-04-06
0
60
2011-04-06
0
 
CopyrightⒸ by TJPlaza 2014.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