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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죽자![165호][광장칼럼]
2011-08-02 09:27:47

[광장칼럼]

잘 죽자!

곽대중 / 대한상공회의소 북경사무소 전문위원

어떤 사람이 ‘웰다잉(welll-dying)’과 관련된 사업을 하고 있다기에 참 그럴 듯한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이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잘 먹고 잘 사는 ‘웰빙(well-be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그에 못잖게 중요한 일이 ‘잘 죽는’ - 즉 ‘웰 다잉’하는 일이다. 최근에는 ‘웰다잉 지도사’라는 직업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생명의 존엄을 가볍게 여기면서 ‘내가 내 목숨을 끊겠다는데 누가 상관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세태에, 멋지고 명예롭게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최근 세 권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공병호의 <3040, 희망에 베팅하라>, 다른 하나는 지인의 소개로 읽게 된 일본 경영컨설턴트 사토 료의 <원점에 서다(Back to the basics), 그리고 김훈의 소설 <내 젊은 날의 숲>.

공병호의 책은 언제나 그렇듯 생활과 인생에 전의(戰意)를 불태우게 만들어준다. 이번에도 그의 책을 통해 목표(目標)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대학시절부터 사명서와 유언장을 써놓고 매년 그것을 갱신하는 습관이 있다. 최근에 직장을 옮기면서 향후 5~10년 사이의 목표를 수정할 일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참에 사명서를 세부적으로 다시 쓰는 계기를 만들어주어 고맙기만 하다. 특히 무언가를 수정(修正)한다는 일에 일정한 허탈감을 갖고 있던 차에 “실수한다는 것, 실패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을 배워가는 하나의 과정이나 방법일 뿐이다. 지나치게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은 결코 행동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상상만할 뿐이다.”는 공병호의 지적은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사토 료의 책을 덮을 즈음엔 때마침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보내온 이메일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시간 날 때마다 기본으로 돌아가라.”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이러한 제목으로 쓴 칼럼에서 최근 한국 가수 아이유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비결을 ‘가수로서의 기본기’로 꼽았다. 그러면서 신중현, 조용필, 김창완, 서태지 등을 예로 들며 혁신과 창조가 그들의 공통점이지만 역시 기본기가 있었기 때문에 대중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임진모는 “학생이든, 공무원이든 그리고 직장인이든 첫 번째 덕목은 기본에 대한 끝없는 환기이며 그를 통해 혁신과 창조의 길로 내달릴 수 있는 것”이라며 “따라서 시간 날 때마다 ‘나에게 요구되는 것의 기본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Back to the basic'인 것이다.

김훈의 소설에는 여러 죽음이 등장한다. 할아버지의 죽음, 아버지의 죽음, 미술학원 원장의 죽음, 숲 해설사의 죽음, 한국전쟁 전사자들의 죽음, 그리고 말의 죽음, 개미의 죽음……. 거기에는 우리가 차마 눈치채지 못한 꽃과 나무, 풀들의 고요한 죽음도 덧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죽음이 주된 소재로 등장하는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묘하게도 나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삶과 죽음의 변증법이랄까, 죽음으로 하여 인생이 완벽해지고, 고통과 슬픔을 껴안고 나아갈 때에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하게 빛나는 것이다. 이 소설이 출판되고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김훈은 이렇게 말한다. “고통의 켜를 독자들이 잘 들여다보기를 바랍니다. 고통을 잘라버리고 행복과 희망 쪽으로 가지 말고 같이 끌어안고 가는 삶이 올바른 삶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해서 세 권의 책이 하나로 엮여 내 가슴에 달려왔다. 우리의 인생은 뚜렷한 목표를 향하여 거침없이 나아가야 하는 길이되, 거기에는 반드시 기본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끌어안으며 예정된 죽음의 순간을 향해 한 발 한 발 조심히 나아가는 길이이라.

그리하여 잘 죽는 것!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인생의 목표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지난해 연말에 보았던 영화 <비성물우(非诚勿扰) 2>의 한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쑨훙레이(孙红雷)는 불치병을 않아 임종을 눈앞에 둔 환자로 등장하는데, 죽기 직전 가족과 친지, 지인들을 모아놓고 장례식을 치른다.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른바 ‘생존 장례식’이다. 장례식의 참석자들은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 쑨의 앞에 하얀 국화꽃을 놓아주며 ‘당신은 이러이러한 사람이었지’라고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쑨도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차마 건네지 못했던 말들을 전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저러한 죽음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렇게 마지막을 세심하게 준비하는 죽음이 있는 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오직 하늘만 알고 있는 ‘그날’이다. 살아있는 오늘 우리의 과제는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바로 지금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자,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라고 손을 내밀 때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잘 살자! 그것이 바로 ‘잘 죽는’ 법이다. 이번 주말에는 유언장도 약간 고쳐봐야 할 것 같다. 유언장이 얼마나 인생에 의지를 북돋아주는지, 그 역설의 행복감은 써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즉생(死卽生)이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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