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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향하는 존재[190호][광장칼럼]
2014-04-03 15:49:07

이달 초, 여동생의 부음을 받았다. 폐암 말기를 선고받고 3-4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6년 동안 당당하게 투병했는데, 급기야 53세의 젊은 나이에 전신에 퍼진 암세포를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조실부모하고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형편에 있는 동생을 데려다 공부시키며 부모 노릇(?) 했던 필자에게 동생의 죽음은 살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다가왔고 장례 절차를 치르는 내내 ‘죽음’을 생각하게 했다. 육체적 삶의 끝으로 모든 관계의 단절로 아무도 피하지 못하고 거부하지 못하며 전신으로 맞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 죽음을 나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의 유서에서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이라며 부엉이 바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음으로 들어갔다.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그 말은 아직까지 필자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죽음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한 생명체의 모든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어 원형대로 회복될 수 없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 심장 고동과 호흡 운동의 정지를 표준으로 삼는데, 이 죽음의 형태도 가지각색이다. 천수를 누리고 기력이 쇠진하여 저절로 여러 기능이 멈추는 자연사가 있는가 하면, 여동생처럼 아직 창창한 나이에 뜻하지 않은 병으로 혹은 사고로 죽음을 맞는 경우도 있다.

 

  어떤 철학자는 인간을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라 규정했고, 어떤 소설가는 “산다는 것은 무덤을 향하여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스의 비극 시인인 소포클레스(Sophokles)는“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을 돌려라. 그리고 미구에 죽을 것이라 생각하라.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인가를 그대가 아무리 번민할 때라도 밤이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번민은 곧 해결될 것이다. 그리하여 의무란 무엇인가, 인간의 소원이란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인가가 곧 명백해질 것이다. 아아, 명성을 떨쳤던 사람도 죽고 나면 이렇게 빨리 잊혀지는 것일까!”라며 인생의 무상함을 설파했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너그러웠던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李滉)선생은 개인적으로 필자의 14대 조부이신데, 죽는 날까지 구도(求道)의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으며,‘죽음은 늘 가까이에 있기에 삶에 겸손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子路)가 죽음에 대해 묻자 “삶에 대해서도 모르거늘 어찌 죽음에 관하여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라며, 죽음보다 삶을 더 절실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 ()을 말하여 사랑을 가르쳤고[仁愛人也], ()를 강조해 사람은 이 세상에 단독자(單獨者)로 오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조상을 뿌리로 해 태어나는 것이며, ‘나’를 출발점으로 해 나의 분신인 무수한 자손이 뻗어 나간다는 것을 가르쳤다. , 사람은 죽음으로 하여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손의 모습으로 영원히 이어져 간다는 것을 효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에서의 죽음은 육신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 두 가지로 나눈다. ‘육신의 죽음’은 그저 생물학적으로 한 생명체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어 다시 원상대로 회복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영혼의 죽음’은 생명의 원천인 영혼이 육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육체에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간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 앞에 가서 신불신(信不信)에 대해 필연적인 심판을 받게 되기에 육신의 삶에 연연하기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여 부활을 통한 영생을 얻어야 하며, ‘죽음은 두려워 할 바가 아니라 오히려 바라야 할 바’라고 가르친다.

 

슬픔 가운데에서도 감사한 것은 여동생이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을 믿는 돈독한 신앙생활로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편안하고 밝은 모습으로 자는 듯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처음 암을 선고 받았을 때 ‘두 아들이 군대 제대하는 것을 보면 좋겠다’라고 기도했는데, 금년 4월에 막내가 제대를 했으니 기도가 이루어졌고, 또 이 기간 동안 확신에 찬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하늘나라에서 안식하게 되었으니 한낱 잠자는 상태에 불과한 육체적 죽음 앞에 새로운 만남의 소망을 바라봄으로 인해 혈육의 죽음에 위로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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