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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호] [조선족 수필] 딸의 조선어 공부
2006-11-29 18:28:12
딸의 조선어 공부

                                                                                   이복철(전 해림시조선족중학교 교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뜬금없이 아내가 애를 한족학교에 보내자고 성화다. 한족학교라니?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딸이 다니는 학교는 해방 전에 일본인이 지은 2층 건물인데 절반은 조선족소학교이고 절반은 한족소학교이다. 얼핏 생각하면 학교를 2등분했기에 규모가 작은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학생을 몇백명 수용하는 신안진에서 가장 큰 조선족소학교이다. 해방전에 조선족학교는 1완소(第一完全小學校),한족학교는 7완소(第七完全小學校)라고 하였다. 물론 해방이 되면서 신안진조선족중심소학교와 신안진한족소학교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습관적으로 흔히 1완소, 7완소라고 한다. 비록 두 학교가 이웃해 있지만 한족학교는 조선족학교에 비해 많은 면에서 뒤떨어졌다.

한족학교에 보내자고? 어림도 없다. 처음부터 한마디로 단호하게 거절했다. 애한테도 한족학교에 가선 절대 안된다고 쐐기를 박았다. 하지만 고중졸업반 담임이라 밤낮으로 학교에만 붙어있다 보니 그 사이 아내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몰랐다. 어느날 저녁을 먹는데 아내가 말했다. 애를 이미 한족학교에 보냈단다. 대뜸 발끈했지만 이미 다 쒀놓은 죽이라 달리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쓴 입을 다시다가 애한테 단단히 다짐을 해 두었다.

“집에 와서 한마디라도 중국말만 해봐라, 당장 조선족학교에 보내겠다!”

그런데 그때 애한테 한 말의 유효기간이 그렇게까지 길 줄은 몰랐다. 애는 집에 와서 정말 중국말을 하지 않았다. 딸은 조선족소학교를 2학년까지 다니고 한족학교에 갔는데 그때로부터 대학까지 줄곧 한족학교를 다녔지만 중국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애가 너무도 중국말을 하지 않아 오히려 내가 은근히 마음이 쓰였다. 정말 중국말을 할 줄 알기나 아는지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딸 아이 생일날에 일부러 친구들을 불러오게 하고 슬며시 살펴보았더니 제법 애들과 어울려 말을 곧잘 했다. 중학교 때는 작문 경연에 참가하여 1등상을 받아오기도 하기에 한시름을 놓았다.  

지금도 딸 아이는 여전히 집에선 단 한마디도 중국말을 하지 않는다. 전화가 와도 “爸,電話!” 하는 법이 없다. “아버지, 전화 왔습니다.”ㅡ언제나 우리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은화는 정말 조선말을 잘한다. 아버지가 조선어문 선생이니까 확실히 다르다.”고들 한다. 의례 집에서 조선어문을 가르치는 줄로 안다만 천만의 말씀, 품을 놓고 전문으로 조선어문을 가르친 건 아니다. 그저 평소에 우리 말로 된 책을 일상적으로 읽게 하고 집에 와서 중국말을 못하게 했을 뿐이고 일상 대화를 우리 말로 생활화 했을 따름이다.

애를 한족학교에 보낸 집들을 보면 일상 대화가 한어이다. 내가 예전에 있던 현성에 자녀를 한족학교에 보낸 사람이 매우 많았는데 대부분 가정에서 애와 한어로 대화했다. 어떤 부모들은 한어를 잘 못하면서도 애와의 대화를 통해 중국말을 배우기 위한 알량한 궁리로 일부러 애와 중국말을 했다. 그러다보니 애들은 점점 우리 말을 하기 싫어했다. 부모들은 애가 자연스럽게 우리 말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중국말만 하는 것을 오히려 대견스럽게 여겼다. 이런 가정의 애들은 거의 대부분이 우리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거나 대충 알아듣는 정도이고 우리 말 대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 타민족들도 일부러 학비를 내면서 우리 말을 배우고 있는데 같은 값이면 제 민족의 언어도 알면 얼마나 좋겠는가? 맑스는 “외국어는 인생 전투에서의 일종 무기이다.”고 하였다. 세계가 점점 하나의 ‘지구촌’으로 되면서 외국인과의 교류가 날로 빈번해지고 있다. 특히 한국기업이 중국에 대량 진출하면서 조선족들은 다른 민족에 비해 취업면에서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조선족이면서도 제 민족의 말과 글을 모르는 사람은 한족이나 다름없어 이런 특혜를 향수할 수 없다.

필자의 동창생 한명이 모 소학교에서 교장을 담임하고 있는데 한어가 익숙치 못해 여러모로 불편을 겪어온 자신의 처지를 고려하여 두 딸애를 아예 유치원때부터 한족유치원에 보냈다. 가정에서의 일상 용어는 물론 한어였다. 한족 회사에 출근하는 애 엄마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말에 능통치 못한 아버지마저 중국말을 해댔으니, 이건 작정을 하고 중국애로 만드는 격이었다. 몇 년 전에 만났을 때 그는, 적당히 절충을 하는 건데 너무 극단으로 나갔었다고 하면서 자책을 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은 대학을 졸업한 큰 딸애가 우리 말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고, 제 동생한테 우리 말과 글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 것이란다.  

정말, 딸에게 조선어문을 가르친 적이 있긴 있다. 애가 4학년 때였다. 언제인가 집에 와보니 솥뚜껑에 딸아이가 써놓은 쪽지가 있었다. 자기 혼자 먼저 점심을 먹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가니 기다리지 말라는 내용이었는데 철자와 띄어쓰기가 하나씩 틀렸었다. 이대로 둬선 안되겠다 싶어 그 길로 조선족소학교에 다니는 조카딸의 조선어문책을 가져다가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날, 한족직업고중에서 한어를 가르치는 아내가 “이야기집(故事会)”을 가져왔는데, 애가 그 책을 보기 시작해서부터 우리 글로 된 책을 도무지 보려고 하지 않았다. 처음엔 딸아이가 내 눈치를 흘끔흘끔거리던 것이  얼마후에는 아주 당당히 책을 펼쳤다. 전적으로 아내의 작전이었다. 필자가 뭐라고 하기만 하면 아내는 곧 반대를 하며 딸을 두둔한다. 그만하면 조선말은 됐으니 한족학교에 다니는 만큼 이젠 한어가 급선무라고 하면서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며 애를 자기쪽으로 끌어당겼다. 언제인가 대학을 졸업한 한 제자가 놀러 왔다가 이 얘기를 듣고는 “부부간의 조선어와 한어의 대결!” 하고 익살스럽게 말해 웃은 적이 있다. 그때는 집이 학교 울안에 있었는데, 밥만 먹으면 학교에 나가다보니 딸아이에 대한 단
속이 흐지부지해졌고 따라서 조선어문 공부도 용두사미가 돼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쪽지 사건이 있은 후부터 메모를 남길 때마다 꾀돌이 딸아이는 한어로 써 놓곤 했다. 그래서 내놓고 말은 못하고 속으로 (한 두개 틀렸어도 나무라지 말고 잘 유도했어야 하는건데…) 하고 가끔 후회하곤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딸이 대학을 다니면서 스스로 우리 말의 필요성을 깨닫고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한국위성을 방학때 오면 꼭꼭 시청했고 우리 말로 된 신문 잡지도 뒤적거렸다. 그리고 연하장을 보낼 때마다 언제나 우리 글로 또박또박 적어 보내 주었는데 나는 그것을 금덩이보다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광주의 한 일본 회사에 취직을 했을 때 딸아이는 한국부를 책임졌었는데, 한국에 홍보할 자료를 작성해서 보내온 적이 있다. 애가 한국자료를 얼마나 보았는지 어떤 외래어는 나도 사전을 뒤적거려야 했었다. 물론 다듬어야 할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었지만 그만하면 제법 틀이 잡힌 셈이었다. 딸아이가 대학을 다니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메신저를 하고 있는데 늘 우리 말로 채팅을 한다. 채팅 중에 간혹 틀린 것이 나타나면 놓치지 않고 그때그때 시정도 해주고.

지금 딸은 한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는데 4개 나라 언어를 알기에 아르바이트하기가 퍽 편리하고 따라서 주위에서도 아주 부러워한다고 하면서 은근히 으쓱해 하는 눈치다.

조선족 아이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부모들이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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