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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고모님을 그리며[115호][옛날이야기]
2007-07-09 11:13:26

전에 이야기 한데로 나에게는 중국에 조선족으로 남아계신 두 분의 고모님이 계신다.

한분은 지난 호에 이야기한 티에리(鐵力)에 사시는 둘째 할아버지 딸이신 올해 86세이신 (임은규)고모님이고 또 한분은 넷째할아버지의 딸인 연변에 사시는 고모님(임분규)이신데 지난 4월4일 노환으로 84세의 나이로 소천 하셨다.

중국과의 국교가 없어 서신왕래를 전혀 할 수 없었던 것이 1983년경부터 중국에 편지를 송부할 수 있게 되어 우리는 중국에 놓아두고 온 두 고모를 찾기 위하여 넷째 할아버지의 딸의 남편인 고모부가 해방때 아성(阿城)과 상지(尙志)사이에 있는 몰산(帽儿山)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던 학교에 편지를 송부하였다. 그것이 거의 1년 만에 기적적으로 회신이 왔다. 우리 편지가 몰산(帽儿山) 학교에 도착 하였으나 이미 고모부는 이곳에 안계셨으며 그 학교 교장선생님이 편지의 수신자인 고모부의 이름을 보고 연변에 사시는 고모부에게 보내주어 연락이 닿았던 것이다.

고모부는 해방 후 1948년 당시 하얼빈에 주둔하고 있던 주덕해정위의 비서실장으로 근무 하고 있었기에 주덕해가 연변지구 서
기장으로 가게 되어 1950년 가족전원이 연변으로 이사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1956년 33세의 젊은 나이로 연변대학 당위서기로, 1961년에 연변주위서기를 역임하셨는데 문화혁명 때 타계하셨다고 한다. 1978년 조남기 서기(후에는 중국 군부 상장(대장), 전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 역임)의 도움으로 고모부의 명예가 회복되고 그 후 4남1녀의 자식들은 승승장구 출세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1985년 큰아들이 연변자치주 문화국장으로 있을 때 연변 예술학교 예술단을 이끌고 미국전역을 돌면서 공연을 한 것을 한국 정부에서 알고 중국교포의 초청이 어려웠던 그 시절 특별히 정부에서 협조하여 주어 고모님과 고모님의 큰 아들을 초청 할 수가 있었다.

드디어 1986년 4월 중순에 고모님과 고모의 큰아들이 김포공항에 도착하였다. 48년 만에 만나는 고모는 그 예뻤던 얼굴이 할머니가 다 되어 회색바지에 회색 윗도리를 입고 나오시는데 그 감격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두 달을 체류 하시면서 고향도 가보시고 모든 친척들을 만나시고 6월 달에 중국으로 가시는데 마침 그때 우리나라에서 그 해 가을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이 열리는 것을 그 당시 중국과 한국간에 정부나 민간인의 교류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중국정부에 홍보해달라며 한국올림픽준비위원회에서 각종 홍보자료와 호돌이, 영화 필름, 녹화테잎 등 10여 상자를 고모와 그 큰아들에게 주면서 중국정부의 유관기관에 전달해달고 부탁해왔었다.

비행장에 도착하여 짐을 부치는데 짐이 너무 많아 운임이 몇 십만 원이 나왔다. 결국 그 운임은 내가 카드로 결제했다. 그러나 이 자료는 고모의 아들이 북경의 유관 기관에 전달 한 후 1개월 만에 중국중앙방송에서 중국체육대표단이 한국 아시안게임에 참가 한다고 발표 하였다고 한다. 그때의 민간외교의 일익을 담당했던 고모의 큰아들은 그 후 연변TV방송국장을 역임 하였다. 그리고 그 후 KBS 와 MBC등에서 중국진출을 위하여 고모의 큰아들을 자주 한국에 초청 하였다. 덕택에 나도 방송국 구경을 자주 하였다.

1991년10월17일~20일까지, 고모의 큰아들인 연변TV방송국 김희관 국장의 초청으로 MBC가 인솔하는 한국예술단이 사상 처음으로 연변을 공연방문하였는데 이덕화씨가 사회를 보고 주현미, 최진희, 이선희, 김완선, 이상은 등 유명가수들이 연변예술극장 무대에서 동포들을 위해 새벽 4시까지 공연을 하였는데 극장 안팎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하니 그 무렵 한국 연예인의 인기가 연변조선족에게 얼마나 많았음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고모의 둘째 아들은 도문시장을 역임한 후 주위선전부장을 거쳐 현재 연변대학 당위서기로(40년전에 아버지가 하셨던) 재직 중이고 셋째 아들은 연변 교통국에서 처장으로 근무하다 퇴직하였고, 넷째 아들은 미국유학 후 다시 일본 동경대학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일본문제연구소 부소장에 재직중이며 미국, 일본, 한국에 관한 중국의 외교정책 연구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한다. 그리고 딸은 의사이며 사위는 현재 진황도에서 한국어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금 손자손녀들은 한국, 일본, 영국, 싱가포르와 북경과 진황도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살고 있다.

연변고모는 이렇게 노후를 자식들의 출세를 지켜보며 84세까지 행복하게 사시다가 노환으로 금년 봄 4월4일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고모님의 명복을 빈다.

그 후 나는 고모의 큰아들이 추천하는 중국조선족들의 고국방문 초청을 중국에 발송하기 시작하여 수많은 조선족들이 나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내가 중국조선족들을 너무 많이 초청을 하였더니 중부경찰서에서 나의 사무실로 찾아와 돈을 받고 초청해 주었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지금 중국의 조선족은 한국기업이 중국에 진출함으로 많은 조선족 젊은이들은 한국기업에 취직 하거나 같이 사업을 하여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앞으로는 중국의 조선족은 한국 사람들보다 중국을 잘 알고 또 언어도 문제없으며 중국인들보다 한국을 잘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조선족은 타 민족에 비하여 중국내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리라 확신한다. 아마도 중국은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나라임에 중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조선족 중에는 반드시 한국 현대의 정주영 회장과 삼성의 이병철 회장 같은 사람이 나올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조선족은 우수하다는 것을 나는 어릴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조선족에게 기대를 건다. 중국에서 성공하는 조선족이 많이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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