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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변하고 있다[116호][옛날이야기]
2007-07-09 11:18:48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왕래하여 어지간한 사람은 중국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내가 중국을 처음 왔을 때는 수교전이기에 한국 사람이 중국에 온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고로 모든 것이 처음 보고 듣고 하다보니 경이롭고 또한 신기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국은 전에 통행금지라는 것이 있어 밤 12시만 되면 모든 교통수단이 끊어짐으로 11시 반쯤 되면 무교동에서 쏟아져 나오는 주당들이 손가락을 둘로 또는 셋으로 두 배 또는 세 배 준다하며 택시를 잡던 때가 있었다. 그것도 못 잡으면 골목안 어느 여관에서 새벽 4시까지 옆방에서 술에 취해 떠드는 주정꾼들의 소리를 들으며 뜬눈으로 새우다 새벽 4시면 뛰쳐나와 택시로 집에 돌아가면 수 없는 변명을 해야 했던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1년에 한번 크리스마스 날이면 통금이 없었다. 그날은 공연히 밤 12시가 지나도 집에 안가고  파출소 앞을 왔다 갔다 하며 그동안 못해본 행동을 하면서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중국에 처음 와보니 은행도 백화점도 점심때는 문을 닫았고 식당도 상점도 국영이니 저녁이면 퇴근하여 문을 닫았으니 거리에 사람이 있을리가 없었다. 사람의 그림자뿐 아니라 한대의 차도 다니지 않았고 가로등마저 희미하여 꼭 유령의 도시같았다. 택시래야 하이얏트 호텔에 외국인을 위한 크라운 중고차 몇 대 뿐이었으며 그때는 일반 택시도 없었다. 더구나 자가용은 관용차뿐이니 밤에 나다닐 이유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90년도에 들어서면서부터 24시간하는 음식점이 생기고 길가에 신문지를 깔고 팬티 몇 장을 놓고 팔거나 가로수에 줄을 메고 내복 몇 개를 걸어놓고 파는 개인장사치가 생기기 시작하였고 7-8년 된 일제 중고차의 택시가 생겼다. 그러더니 노란 빵차의 택시가 나왔다. 타기만 하면 무조건 35원을 지불해야 하는 택시를 타고 20원짜리 된장찌개를 먹으러 갈려면 교통비 왕복70원을 지불해야 했다. 그렇게 중국은 눈이 돌 정도로 변화 되어 가고 있다.

88년도에 처음 연길을 방문하였다. 거리의 간판이 모두 한글로 되어 있었으며 시장에 가니 조선족 아줌마가 우리말로 김치를 팔고 있었다. 백두산 가는 길 중간 산골에 조선족 학교가 있었는데 간판이 한글로 0000소학교로 되어 있었다. 가슴이 뭉클하며 눈물이 나왔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변함없는 우리 민족의 뿌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전호에 잠간 언급했던 고모의 큰아들이 연변자치주 문화국장으로 있을 때 연변 예술학교 예술단을 이끌고 1985년 미국전역을 돌면서 공연을 하였었다. 그때 단장인 고모의 큰 아들이 인사말을 이렇게 하였다 한다.

“미국에 살고 계시는 동포 여러분 우리는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 온 조선족 예술단입니다. 우리들은 전부 이민 3-4세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의 언어와 모든 전통을 잊지 않고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번 우리가 미국에 와서 공연하는 것도 우리의 언어와 풍속과 예술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여러분께 보여주고자 왔습니다. 부족하더라도 많으신 성원을 부탁 합니다”

가는 곳마다 공연장을 꽉 메운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소리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한다. 더욱이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0.5세도 한국말을 못하는 미국교포들의 실정을 한탄하며 우리도 중국의 조선족를 본받자고 하였다 한다.
한국도 이제 국제결혼이 흔한 이야기가 되었듯이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도 한족과 결혼하는 사람이 늘고 있음은 어쩌면 시세의 흐름이라고 보여진다.

한중국교가 수립된 후 많은 한국 사람들은 조선족이 있기에 중국진출이 용이 하였고 조선족은 한국인의 중국진출로 인하여 일자리가 많이 생겨 수많은 젊은이들이 직장 따라 도시로 진출하여 살게 됨으로서 고향의 조선족 학교는 정원 미달로 문 닫은 곳이 많아졌고 도시에 사는 조선족들은 자녀들이 조선족 학교가 없어 할 수 없이 한족학교에 보네다보니 집에 와서도 중국어를 사용하게 되고 자연히 한국말을 못하는아이들이 많이 생기는 것을 이제 주위에 있는 조선족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되었다.

언어는 13세까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즉 소학교 시절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13세가 넘으면 현제 사용하고 있는 말투가 고정되어서외국어의 말투에 익숙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허비 된다 한다. 아마도 여러분도 많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어린애들과 함께 천진에 진출한 부모들은 자기의 아이들은 금방 중국어를 중국아이들과 똑같이 말할 수 있는데 정작 본인들은 이미 혀가 굳어서 영 발음이 제대로 되질 않아 열 받고 있을 것이다.
많은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을 중국어를 배우게 하고자 천진까지 유학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한국에 유학을 보내고 있다.

모든 부모들은 자식이 커서 잘되는 것이 소원일 것이다. 나는 조선족 젊은이에게 바라는 것은 본인들이 자식들에게 좋은 가정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이 조선어를 못한다는 것은 자식들의 외국어 하나를 손쉽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것과 같다고 본다. 요 근래 중국인들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한다. 그리고 또 많은 부모들이 외국어를 배우게 하려고 비싼 학비를 들여서 타국에 유학까지 보내고 있는데 말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런 부모들이 많아 졌다는 이야기 이다.

내가 아는 조선족 아주머니 한분은 아들이 북경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어릴 때 한족학교를 보내다보니 한국어를 하나도 못한다 한다. 졸업하여 한국기업에 취직코자 지금 와서 한국어를 배울려하니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하소연 했다 한다. 어릴 때 자연히 우리말로 대화하며 키웠더라면 아마도 지금 같은 아들의 고통이 없었을텐데 무심했던 자기의 행동에 지금 와서 후회하고 있었다.

나는 근 20년 동안 중국에서 수많은 조선족 젊은이들과 함께 일을 하였다. 그들의 한글실력이 나보다 월등히 우수하였음에 나는 중국에 사는 조선족의 교육정책에 항상 경의를 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들은 조선족 학교에 보낼 수 없음으로 인하여 우리 말은 전혀 못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음을 나는 늘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이 천진의 JCBMC가 조선족 아이들을 위하여 주말 한글학교를 개설한다는 소식이 있다. 많은 조선족 아이들에게 좋은 기회와 희망이 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희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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