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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대한 추억 [117호][옛날이야기]
2007-07-16 18:18:36
mk

 

아버지에 대한 추억 -1- (나의 옛날이야기 65)

 

누구나 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도 아버지에 대하여 존경과 그리움과 원망등 수많은 추억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난번 81세 되시는 나의 형님께서 아버지의 유고를 정리하여 나의 카페에 올려 주셨다.

유고를 읽으면서 아버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였으며 또한 아버지의 살아오신 과거에 대하여 내가 미처 몰랐던 많은 것을 알게 하였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그늘이 나에게 끼친 영향이 너무나 컸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으며 아버지 생전에 좀 더 아버지를 이해하고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하였음을 너무나 송구스러운 생각에 아버지의 유고를 근거삼아 아버지를 회상하며 이글을 써서 사죄하는 마음으로 아버지께 바치기로 하였다.

아버지가 출생하신 곳은 충청북도이지만 할아버지 이전은 경상북도로서 13대조께서 예천

에서 의흥(義興)으로 또 청송(靑松)으로 이사하시고 그 어른의 증손으로부터 6대를 계속

해서 7()가 났다한다.

그로 인하여 순조(純祖)께서 8대조에게 통훈대부장락원정정평부(通訓大夫掌樂院正定平府使)

7대조에 통정대부응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으로

6대조에가서 희선대부겸동지중추부사돈의금(嘉善大夫兼同知中樞府使敦義禁)으로

5대조에 가서는 대부호조참판 겸동지의금부사(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등 증행직을 내리시니 한때는 이름을 날리는 가문이었으나 성쇄의 순이랄까 효문불번

(孝門不繁)의 탓이 인지 그 후는 인물과 가세가 공히 궁핍하여 비참할 정도로 쇠락했던 모양이다. 이에 할아버지께서는 고조부님의 산소가 괘등형(掛燈形)임을 상기하시고 또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연히 고향을 떠나 충청북도로 이주를 단행한 것이라 한다.

소위 남부여대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하면서 여러 날을 거쳐 찾아온 곳이 충북괴산(槐山)

였다 한다. 괴산은 풍광명미(風光明媚)하고 평화안은(平和安檼)한 인심 좋은 고향 이었으나 빈한한 처지에 맨손으로 찾아온 타향에서의 생활은 곤란하기 그지없었다 한다.

아버지께서는 1905년6월15 괴산읍 동부리에서 출생하셨다. 아버지의 어린시절은 가난한 집안일망정 할머님의 인자하신 보살핌으로 구김살 없이 잘 지내셨다고 회고하시

고 계셨다. 10살부터 3년 동안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셨으며 그러다가 12세가 되던 해에 학교에서 학생모집을 나왔으나 완고하신 할아버지께서는 일언지하(一言之下)로거절을 하였으나 선생님의 간곡한 설득으로 「한문도 좋지만 성인도흥세출(興世出)이라」하지 않습니까. 시대변천에 따라 신학문을 배워줘야 자손이 발전 할 것이고 영화를 볼겄입니다]

이런 의미의 말로 설득을 하여 할아버지가 마지못해 승낙을 하시게 되어 아버지께서는 괴산공립보통학교1학년에 입학을 하게 되였다 한다. 그때는 일본과의 합병초기여서 학교

가 군청소재지에 1개밖에 없었다 한다. 군수는 한인이고 교장은 일본인인데 출장에동행이 되든지 연회에 동석이 되면 교장을 더우대하는 시대였다. 대라우찌(寺內)총독의 무단정치로 인해 선생님들도 칼을 차고 제복에다 금태모자를 쓰고 위세가 당당하였다 한다.

입학식날 교장이 일어로 말을 하고 한인선생이 우리말로 통역을 하고 식이끝난 뒤에책과 과자까지 얻어갖고 좋아라고 돌아오셨다 한다. 다음날 등교하여보니 1학년에상투올린 학생도 있고 20세 내외 뿐만 아니라 집에 아들딸이 있는 학생도있었다 한다. 몇 일후에 머리를 깎게 되는데 기계 끝에 상투가 뚝떨어지니까 이것을 집어 들고 무어라 중얼거리며 (아마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불감훼상(不敢毁傷)이효지시야 (孝之始也)니라고 했겠지)눈물을 닦고 싸가지고 가는 자도 있었다. 그것을나이어린 애들이 놀려 대군 하였다 한다. 아버지께서는 그중 나이가 어린 편으로 정말 어린애 취급을 받지 않을 수 없었지만 공부는 언제나 최우수한 성적이어서 선생님의 총애를받았고 급장까지 하게 되어 아버지한테는 모두가 특별히 대해 주었다 한다. 3학년 나이 15세 때 그 해 기미년 3월초가 되자 만세를 부르자고 상급생(3.4학년)이 모의를 하게 되는데 아버지는 3학년을 대표 참의(參議)를 하게 되었다 한다. 만세운동이 경기로부터 시작하여전국 각지에봉기하였으며 주모자는용서 없이 체포되어 수감된다는소문이 났으나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용감히 싸우자고 단단히 언약을 했는데 당일이 되니할아버지의 엄명으로 방안에 금족이되어 한발 자욱도 외출을 불허하여집안에 갇혀 있었는데 집 앞으로 만세를부르며 지나가는 군중을 문틈으로만 내다보며가슴을 조였던 것이 비록 부모님 때문이라 하지만 두고두고 오랫동안 부끄러운 생각에 사로잡혀 한동안 학교를 가지 않으려 했었으나 엄한 할아버지의 마음을 거슬리지 못하여등교 하셨다 한다. 아마도 할아버지께서는 종손이요 외아들인 아버지를 위험한 곳으로 내보낼 수 없었던 심정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는 충청북도에서 1923 19세 때 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30명의 졸업생은 월봉 40원씩으로 각기 임지로 부임하였으나 아버지는 그중에서 성적이 제일 우수하다 하여

조선공립보통학교훈도명옥천공립보통학교근무급월봉42(任朝鮮公立普通學校訓導命沃川

公立普通學校勤務.給月俸42)이란 사령장을 받고 첫 임지인 옥천에 부임을 하셨다 한다.

이때에 면장이 20-30원 군속(郡屬) 30-35원이었고 그 당시 쌀 한말에 50전 송아

지 한 마리 3원이였다하니 아주 좋은 대우였을 것이다.

그 후 충청북도의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시면서 교사로 근무하셨는데 충북 단양(丹陽)

근무하실 때 나와 내 여동생이 그곳 단양서 출생하였다. 어버지의 마지막 근무지인 충청

북도 옥천군 군북면 대정리의 간이학교를 창설하시고 근무하시다가 1938년 온 집안식구

와 친척들을 인솔하시고 신천지인 만주로 이주하셨다. 만주에서도 학교교장으로 또 그

고장 유지로 지주로 사업가로 8년을 풍족한 생활을 하시다가 해방과 더불어 그곳에 공들

여 닦아 놓은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귀국하셨다. 다행이 한국에는 만주로 가기 전에 마지막 근무지였던 충천북도 옥천의 두메산골에 가지고 있었던 논밭과 산이 있었음으로 그곳에 안주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귀국하신 후 교육계의 많은 분들이 다시 나오셔서 해방된 조국을 위하여 일하여 달라고 간청을 하였으나 끝내 거절하시고 시골에 파뭍혀서 할 줄 모르는농사 일

을 할아버지로부터 핀잔을 받으시면서도 85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두메산골에서 사셨다.

이 옥천군 군북면 대정리는 정말로 두메산골이다. 앞에는 높은 고리산이 서쪽에서 동쪽

으로 열두 봉우리를 만들며 끝자락에 금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으며 서쪽에서 북쪽으로는

충청남도 경계선을 만들며 한 구비 휘돌아 방화산을 만들고 그 끝자락에서 역행한 산줄기 하나가 우리 집이 있는 안터로 우리 할아버지께서 풍수지리로 좋은 터라 하시어 산을 사셨

고 그 앞에 있는 논밭을 사놓으셨다 한다. 그리고 이곳이 정감록에 나와 있는 피난처라 하셨

으며 6.25전란에서 우리 식구는 한사람도 다치지 않았기에 더욱 할아버지의 말씀이 실감나

게 하였다. 그러나 나는 16세 때에 만주땅에서 해방을 맞이하였고 18세 때 만주에서 구사

일생으로 충청도의 고향땅을 밟았으나 사회와 타협하며 사는 다른 사람의 아버지처럼 안하

시는 아버지의 고지식한 성격 때문에 나는 도회지에 나가서 공부도 못하고 하늘만 빠끔이 보이는 이 두메산골에서 평생을 농사만 짓고 살아야 하는 나의 신세를 한탄하며 아버지를

무척 원망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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