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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대한 추억 -7 [123호][옛날이야기]
2008-01-18 10:11:01

아버지에 대한 추억 -7

아버지가 몰래 귀국한 것이 알려지며 다음다음날 인민재판(人民裁判)이 교정광장(校庭廣場)에서 열었다. 집집마다 전부 동원시켜 모아놓고 임성규(林性圭)는 광복의 역군 이라 우리가 맡을 테니까 하면서 나는 17살에 의용군으로 차출되고 형님은 공산당 간부훈련소에 차출 되었다. 그리하여 졸지에 알거지가 된 우리 집안은 살길이 막막하여 결국 우리 두 형제를 만주땅에 남겨두고 온 식구(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큰 여동생)가 귀국하게 된다.  

아버지께서는 교편생활 20년을 하셨어도 아이들에게 손찌검 한번 안하셨으며 그 후 수년(數年)동안 장(長)자리를 맡아 하셨고 나중에는 고려인회장(高麗人會長)까지 피선되셔서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이 있었지만 남에게 눈 한번 부라린바 없고 고함한번 질러본적이 없으셨던 아버지시다. 오로지 동포를 계몽 하고 선도보호(善導保護)해서 타민족과 섞여 사는데 본이 되게 하셨으며 타국에 와서 손색없이 잘 살아 보겠다고 일구월심 노력하셨고 항상 주색을 멀리하시고 인격수양(人格修養)에 힘쓰신 분이다. 그럼으로 해서 어디를 가든지 시비를 당한 일이 없었고 남과 척을 진 바도 없으셨으며 모두에게 존경받는 아버지이시였다.

아버지께서는 귀국하시면서 겪었던 일을 수기에 다음과 같이 적으셨다.


할빈서 어찌어찌 기차를 얻어 타고 심양(瀋陽)에 도착 하였다. 여기서 또 다음 기차를 기다리느라 몇일을 묵게 되었는데 그 경황 중에도 피난교포 위안의 밤을 연다해서 모두들 구경을 가게 되었다. 종린이를 데리고 일행과 함께 구경을 하는 도중 종린이와 한자리에 앉았다가 한 걸상 아래층에 내가 내려앉았다. 한참 있다가 보니 종린이가 제자리에 없다 깜짝 놀라 둘러보고 불러봐도 보이질 않는다. 당황해서 변소를 가보고 또 가봐도 1층 2층을 샅샅이 찾아 봐도 없고 이사람 저사람에 물어봐도 본 이가 없다. 출입구에 서 있는 사람도 모른다고 한다.  사람과 돈을 한꺼번에 몽땅 잃었으니  눈앞이 캄캄하고 정신이 아찔하다. 하마터면 졸도(卒倒)를 할 뻔 했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어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어떤 놈이 돈 지닌 것을 눈치채고 한 짓이 아닐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객전(客餞=간이숙소)은 거리(距離)도 상당히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바둑판 같이 된 거리를 이리꼬불 저리꼬불 몇 번이나 돌아서 왔으니 저 혼자는 찾아 갈 수는 없을 텐데 하여간 최후로 허화실수로 여관엘 池서방<만주있을때 우리집 머슴으로 있었던 시람>을 쫓아 보내 보았다.

그랬더니 기적(奇績)~~어떻게 희미한 밤거리를 저 혼자 찾아 갔는지? 용케도 잘 찾아가 울고 있더라는 회보(回報)다.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천우신조(天佑神助)로 조상(祖上)님께서 돌보신 것이다. 벅찬 감정에 눈물이 핑 돌았다.

다시 기차를 얻어 타고 안동(安東)에 도착 하였다. 압록강(鴨綠江)은 건너는데 이것도 제대로 못 건너고 상류(上流)로 올라가 가까스로 도강(渡江)하여 신의주(新義州)에 도착하였다. 신의주(新義州)에는 평산에서 같이 살던 계근식(桂根植)과 백영무(白英武) 두 친구를 방문(訪問)하니 모두 반가이 만났다. 백(白)선생은 평안북도(平安北道) 당위원장(党委員長)으로 있었으나 후일(後日) 남한(南韓)가서 상봉(相逢)키로 귀띔 약속(約束)하고 작별(作別)하였다. (주: 백선생은 후일 남한으로 오셨음)      

다시 기차를 타고 평양(平壤)을 지나 해주(海州)로 가는데 밤차라 평양은 물론 근방 풍경도 살필 도리가 없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평양을 평소 보고 싶었는데 .....

드디어 해주(海州)에 도착하여 수일(數日) 묵게 되였다. 삼팔선(三八線)을 넘기가 힘든 탓이었다. 

    山川은 여구한데 人心은 변했구나.
    내땅인데 내발로서 내 맘대로 못 가다니
    한숨이 절로 나와 눈물마저 짓노라

그곳에서 지리를 잘 아는 안내인을 고용하였다. 석양(夕陽)무렵에 38선 냇가에 도착 검문소의 검문을 간신이 통과하고 야음(夜陰) 을 타서 안내자를 따라 캄캄한 시내를 소리 죽여 건너서 산협소로(山峽小路)를 엎어지며 자빠지며 10리나 걸었을까 한 외딴집 촌가에 들려 거절하는 것을 사정사정해서 불 안땐 한칸 좁은 방에 16명이 신 꼴처럼 배겨 몇 시간을 고생하고 미명(未明) 새벽에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일행 중에는 발이 아파 쩔룩거리는 사람도 있다. 나도 마땅치는 각력(脚力)으로 잘 못 걷는 종린이를 끌고 한 5.6키로 되는 토성(土城)에 도착 하였다.

여기오니 주먹밥도 나누어 주고 차편(車便)도 주선해 주었다. 그러나 사람이 많고 복잡하니 환영도 말뿐 여의(如意)치 않은 모양이다. 무개차(無蓋車)에 콩나물 같이 실려 비를 노다지로 맞으며 남하(南下)하였다.

서울에 닿으니 4월 1일 그러니까 평산(平山)을 출발하여 28일 만이다. 평시(平時)같으면 사흘이면 닿을 대를 근 한달이나 걸렸으니 그간의 고생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난생 처음으로 지긋지긋한 행로(行路)였다. 거지같은 행색을 하고 외사촌(外四寸)을 찾아 며칠 휴양(休養)을 하였다. 일본인(日本人)은 36년간 해놓은 각종시설과 재산 등을 고스란히 두고 갔다. 

정국(政局)이 지극히 혼란 하고 사회가 무질서하기 이를데 없으며 물가도 불안정하여 국민의 생활이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극도로 위협을 받고 있었다. 공무원의 월급이 보통 8, 9백원 안팎이니 쌀 서너 말 값밖에 안 된다. 주먹 센 놈이 활개를 치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부정(不正)과 사술(詐術)을 잘 하는 자를 똑똑하다고 하고 점잖고 양심적(良心的)인 인사(人士)는 머저리 등신대접을 받는 판국 이다. 청주서 몇 달 지내는 동안 선배와 지인(知人)들의 공직(公職)에 나가기를 권유도 받았으나 고지식하고 아부 추세와 기인취재 하는 성질이 아닌 나로서는 암만 해도 맘이 내키지 않는다.     

광복된 조국의 모습이 여차여시 하니 희망(希望)과 기대(期待)를 갖고 온 나는 크게 실망(失望)과 환멸(幻滅)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길만 터지면 죽으나 사나 부모처자가 있는 만주로 그편에서 떠나기 전에 들어갈 생각으로 그쪽 소식을 탐지하기에 힘을 썼다. 최근에 나온 사람을 찾고 라디오를 듣고 신문을 보고해도 시원한 소식을 들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도로 점점 교통이 어려워지기만 하니 답답한 마음 안타까운 심정에 침식(寢食)이 불안해질 뿐이다. 심화(心火)나 끄고 고민이나 잊어보기로 전임지(前任地)와 친구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 옥천(沃川), 지탄(池灘) 괴산(槐山), 단양(丹陽), 그리고 선대산소(先代山所)소재지인 예천(醴泉)까지 일주를 하였다. 그럭저럭 반 년이 지나니 음력 8월 중순이 되였다. 염념불기(念念不己)하든 가족(家族)의 소식 서울서 전보가 왔다, 만주서 나와 무사히 서울 도착이라고 기별이 왔다. 짐도 다소 있을는지..

사촌매부(四寸妹夫) 박성호(朴成鎬)가 자기 트럭으로 마중을 가자고 서둘러 상경(上京)하였더니 노인(老人)두 분이 건강하신 것은 다행이나 아들형제는 빼앗기고 남은 식구만 와있었다. 일희일비(一喜一悲) 라더니 이때 나의 심경(心境)이 바로 그것이다. 돈도 무일푼(無一分)똑 떨어지고 의복(衣服)도 트렁크채 몽땅 도적 당하고 입은 것도 단 벌이였다. 두 형제(兄弟)도 몸 건강한 것을 보고 왔다하며 내 가족과 일가일행 전체가 구사일생(九死一生)의 고생은 했지만 생명(生命)만은 모두 무사하니 불행 중 다행(不幸中多幸)이라 할지 집 없는 사람 다섯만 타고 청주를 경유 대정리 방아실에 도착한 것이 1947년 8월20일 이였다.

귀환 하지 못하고 거기 떨어진 은규(銀圭)네,  병문(炳文)형제들 정필(正弼)형제들 문보(文寶)네는 어떻게 되였을까?. 그리고 남은 동포 들은 어찌들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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