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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대한 추억 -2 [118호][옛날이야기]
2007-08-16 15:35:31

아버지에 대한 추억 -2

전편에 이야기 했다시피 우리 아버지께서는 교편을 충청북도에서 15년을 잡으셨다. 첫 출발을 청주에서 1년 동안 선생님으로서의 교습을 받으셨는데 그 때에 김씨 집안의 無男獨女셨던  어머님을 만나 다음해 봄 19세에 결혼 하셨다 한다.  물론 연애결혼이 아니고 중매였는데 얼굴도 보여주지 아니하고 사진도 안주었는데 주위에서 모두들 권고하였고 또 미리 槐山까지 우리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승낙을 얻어놓은 상태라 그냥 결혼 하셨다 한다.  나도 결혼할 때 얼굴도 안보고 했으니 우리 아버지 시대의 결혼은 더 말한 것도 없었을 거다.  그런데 이번이 우리 아버지는 첫 번째가 아니고 두 번째 결혼이라 하셨다. 첫 결혼은 15세 때 성은 하(河)씨고 2년이나 연상인 17세 처녀에게 가셨다 한다.

아버지의 회고록에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얼굴이 둥글고 까무잡잡하고 살이 통통하고 작달막한 키의 건강체였으며 누구에 의해서 어느 결에 결정된것인지? 본인에게는 전혀 모르는 사이에 말없이 진행 되었다. 인간대사인데 인생에 가장 중대한 일이 이와 같은 결정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으나 그 시대의 조혼풍습이 낳은 당연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형식에 의해 초례를 치루고 초야를 지내고 형편에 따라 당분간 이집에 유숙을 하게 되어 밖의 새 방 하나를 차지하게 되었으나 얼마 안가서 그 규수가 득병(得病)하여 와석(臥席)을 하니 머물러 있을 맛이 없어 철수를 하였다. 그길로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 참으로 애석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 어머님은 무남독녀 외동딸인데도 불구하시고 장손집 며느리로 오셔서 살림을 담당하셨고 음식 솜씨가 아주 좋으셨으며 동네서 어머님의 손이 닿으면 장맛이 좋다 하여 장 담글 때가 되면 집집마다 다니시면서 소매를 걷고 장독 속에  손을 넣어 휘휘 저어 주시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아버지께서는 沃川 근무 9년 만에 丹陽邑으로 전근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적으셨다. “단양은 충청북도의 북단이요 벽지였기 때문에 좌천이라고 딱하게 여기는 이도 있었고 우량 교사인데 어찌된 셈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선생 노릇도 근10년이 되니 권태심과 염증도 생길뿐 아니라 직업을 바꿔볼 생각으로 의논을 해보니 가족, 친지, 선배가 모두 몇 해 남지 않은 은급연한이나 채우라고 만류함으로 벽지에 가서 산수를 즐기며 속히 햇수를 채우고 말 작정을 했기 때문이었다. 1930년 남단에서 북단으로 모처럼의 전근 맛을 흐뭇하게 보았으며 교통이 불편한 벽지이긴 하지만 경치 좋은 丹陽八景과 후한 고장이였으며 전해오는 얘기가 이 고을 원님이 들어올 때 울고 나갈 때 울었다는 곳이다.  심기도 일전하고 수석훈도의 책임도 느끼어 직무에 충실할 수가 있을 뿐 아니라 지방인사와도 친근해져서 4년 동안 재미있게 지냈다. 쉬는 날은 마작 하고 바둑 두고 계절 따라 천렵 선유(船遊)등으로 소견(消遣)을 하니 세월 가는 줄을 몰랐으며 도담(島潭)과 옥순봉(玉荀峯)의 뱃놀이도 좋거니와 산선암(山仙岩)의 가을단풍은 정말 아름다웠고 하선암(下仙岩)의 화녀동반(花女同伴)의 세족척서(洗足滌署)도 즐거워 세월 가는 줄을 모를 정도로 좋았다.  이때는 마작이 성행하던 때라영춘 연구회 에 갔다가 귀로에는 강을 타고 내려오면서 마작을 하는데 강 양편의 절경과 주흥과 오락 속에 감상을 하니 그 취미 진진무비(珍珍無比)였다.

이렇게 신선노름같은 날이 4년이 흘렀는데 어느날 뜻밖에 지탄간이학교(池灘簡易學校) 책임자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한다. (簡易學校는 학교에서 많이 떨어진 벽지의 아동을 가르치기 위한 새로 마련한 신제도며 12살부터 연령 제한이 없으며 2년 졸업제인데 1학년이 소학교 3년까지의 과정을 2학년은 4~6학년 과정을 이수하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그해 이곳 단양에서 출생하였고 3년 후 내 여동생도 여기서 출생 하였다. 

아버지께서는 옛날 어느 원님이 했듯이 丹陽을 석별의 눈물을 흘리며 池灘으로 떠나신 것이 1934년 봄이었다 한다. 그때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형과 나 넷은 충남 大平里로 가서 살았다. 후에 儒城으로 옮겼으나 아마도 할아버지께서는 살기 좋은 곳에 터전을 장만코자 했던것 같았다.

아버지는 이곳 池灘으로 부임즉시 교사신축을 추진하여 초가집을 헐고 새 건물을 지어 이전했을 때는 무척 뿌듯하였으며 교장겸 교사겸 소사겸 일인삼역을 하는 판이었지만 전부가 아버지 자신의 창의에 의해서 경영이 진행 되어 나가기 때문에 보람을 느끼셨다 한다.

그런데 사정에 의해 제반계획이 채 자리도 잡히기 전에 대정간이학교(大亭簡易學校)로 전근을 하게 되었다 한다. 장마철이라 이삿짐운반에 고생한 것은 고사하고 내 여동생이 어렸으므로 어머니가 업고 충남탑산리의 모래사장에 흐르는 번번한 물을 발을 벗고 지나 고갯길을 기어올라 마루턱에 닿아(와정고개)황혼도 짙어 어둠침침한데 앞을 내려다보니 고산심곡(高山深谷)이라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갯마루에 앉아 다리를 쉬면서 서로 말없이 한숨을 내쉬셨다 한다.(이 고개마루는 충청 남북도의 경계이다) 아버지의 회고록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적으셨다. “지방 인사들의 환영은 지극했으나 뒷산은 덜미를 치고 앞산은 이마를 누르는 충충한 골짝인지라 좀체 정이 들지 않을 것 같았으나 주어진 책무를 생각하며 건설도중의 공사 진행과 극히 미비한 환경 속에서 나날이 학생상대로 날가는줄 모르게 지낼 수가 있었다. 이듬해 오곡이 무르익고 하늘 높고 바람 맑은 어느 날 교사 낙성축하 운동회를 주민의 위안속에 끝내고 부모님과 그리고 두 아들 형제를 유성에서 철수시켜 안방에 모신날 밤 사랑방에 우리 양주가 베개를 나란히 하여 창문으로 드려 비치는 달빛을 바라보며 안도를 느끼던 일이 어제 일처럼 추억에 떠오른다” 온 식구가 한데 모여 살게 되었으니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이 두메산골은 나에게는 잊지 못할 고장이다. 아버지께서 표현하신 대로 심심산골이었으나 앞에 높이 솟아있는 고리산 12봉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금강에 닿아있고 봄이면 철쭉꽃으로 온 산이 붉게 물들어 마루에 앉아 바라보면 한폭의 그림 같았다.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시냇물에서는 피라미나 징개미를 잡으며 밤에는 솜뭉치에 석유를 적셔 불을 밝혀 냇물을 따라 올라가며 가재를 주워담던 잊지 못할 곳이다.  봄철엽을 할때는 온 동네가 막걸리를 담구고 동네그물을 다 모아 엮어서 금강을 가로질러 그물을 치고 그 그물을 잡고 위에서 청년들이 고기를 몰고 내려오면 한편은 여울목에 그물을 삐딱하게 치고 그 끝자락에 솔가지로 덮어 놓고 기다리면 위에서 쫓겨 내려오던 물고기들이 솔가지 밑에 숨어들면 여럿이 뛰어 들어가 모래사장에 고기를 잡아 던지던 그러한 추억의 고향이다. 큰 고기는 大田에 내다 팔아 경비에 충당하고 나머지는 큰솥에 햇감자와 햇마늘을 밭에서 뽑아다가 매운탕을 끊이고 온 동네의 남녀노소가 함께 매운탕에 막걸리를 마시며 백사장에서 종일 즐겁게 놀던 잊지 못할 곳이다. 굽이굽이 흐르던 맑디맑은 금강물과 추억의 백사장이 지금은 아쉽게도 대청댐으로 인하여 수몰되고 말았다. 

나는 여기서 간이학교 1학년을 다녔다. 12살부터 입학키로 돼 있었으나 나는 8살로써 아버지의 도움으로 맨 앞의 12살짜리 여자애 옆에 앉아 개머루 먹듯이 1학년을 수료했다. 나이 많아 학교를 못 다닌 두메산골 사람들을 위한 학교였기에 학생 수도 적었고 장가간 사람도 있었다. 한 교실에 1, 2학년이 함께 공부했고 선생님은 우리 아버지 혼자였으며 한쪽이 수업할 때는 한쪽은 복습을 하였다.

 

 

 

 

윗줄 좌측부터 아버지, 어머니, 지금 중국에 살고 계시는 당고모, 형님
밑줄 좌측부터 셋째 할아버지(안고있는 애는 큰 여동생) 할아버지, 할머니
(안고있는 애는 막내여동생) 그리고 나....(1937년 대정간이학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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