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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대한 추억 -9 [125호][옛날이야기]
2008-03-20 15:44:51

아버지에 대한 추억 -9

아버지 께서는 귀국 하여 영농 생활로 두문불출(杜門不出)의 운둔생활(隱遁生活)을 하고 계셨다.

나는 하는수 없이 덩달아 농촌에서 농사일을 거들고 있다가 6.25 를 맞이하였다. 6.25 동란의 발발과 동시에 어머님이 별세하셨고 휴전후에 나는 혼자 서울로 올라가 하고싶던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결혼하여 딸을 둘이나 두고 있을때였다.

할머니도 어머님보다 일년전에 별세하셨고 어머님마저 돌아가셨기에 집에는 홀아비인 두분의 연만하신 할아버지와 아버님이 계시게 되었다.  집사람이 혼자  농사일을 거들며 애 둘 키우랴 두 분을 수발하랴 무척 힘들었을것이다. 그래서 처조모의 주선으로 처조모 친정에 아기 못낳는다고 소박을 받아 이혼 하신 분을 새어머님으로 모셨다. 성은 陸씨였으며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여사와 친척) 이 새어머님은 아버님께 아주 잘 하여 주셨다.

너무 아버님만 위하시니다 보니까 할아버지에게는 아마 소홀이 하셨나보다. 할아버지께서 항상 육씨 어머니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미워 하셨다. 우리집에 오시고 10년째 되던 해 육씨 어머님이 간 경변증으로 돌아가셨다. 그때도 역시 속수 무책이었으며 그저 서울서 약이며 주사약 같은것을 사서 보내 드렸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무렵 우리집 사람은 서울로 올라와 살고 있었으며 새어머님이 돌아 가셨으니 할아버지와 아버님 두 늙은 남자만 남은 셈이 되였다. 그렇다고 대전 계시는 형수님이 와서 마냥 살림을 할 수도 없고 하여 다 같이 가족 회의를 하였다.

할아버지는 연로 하시니 대전의 형님이 모시고 아버님은 서울로 내가 모셔가기로 합의 하였다.

다음날 아침 아버님이 청주 고모부와 어떠한 이야기가 오갔는지 “나는 서울로 가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더우기 고모부께서는 "아무리 악처라도 효부 보다 낳다"고 거들으시고 있으셨다.

장례가 끝나고 나는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와서 새어머니 찾기에 바빠졌다. 신문에서 결혼 상담소 광고를 보고 계약금을 지불하며 여기저기 의뢰를 하였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용이하질 않았다. 그때 아버님의 연세가 50후반 이였으니 모두 돈보고 오지 시골에 사는 사람에게 올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새어머니가 생길때까지 형수님이 방아실서 할아버지와 아버님 수발을 하고 계셨기에 하루가 급했다.

그저 돈만 날렸다. 내가 매일 안타까와 하는 것을 보고 하루는 우리 회사에 출입하시는 호선생이 나보고 자기 여동생 친구가 하나 있는데 젊어서 혼자되였고 남동생 하나를 키우다가 장가 보냈더니 혼자 외롭다고 하여 추천 하니 한번 만나 보라 하였다.
나는 당장에 오케이 하고 다음날 본인을 만나 보았다. 40 대 후반의 아주 인테리(인텔리전트)였다. 나는 곧바로 아버님께 전보를 쳤다 "급히 상경 바람" (그때는 전화가 없었다)

전보를 받고 아버님이 상경하셨다. 명동입구에 있는 명동 다방에서 나하고 셋이 마주 앉았다.

인사소개가 끝나고 아버님께 용돈을 드리고 데이트 하시다 저녁에 집으로 오시라 하고 두분이 같이 데이트 하시도록 하고 나는 사무실로 돌아 왔다. 저녁에 퇴근하여 아버님을 집에서 만나 소감을 여쭈어 보았더니 "다 괜찮은데 좀 약하다" 하셨다. 두 분의 어머님을 앞세운 아버님의 우려에서 였을거다. 그러나 나는 튼튼하고 약한것이 겉으로는 보고는 모르는 것이라 했다.

그리하여 다음날 부랴부랴 아버님께 양복과 구두를 새로 준비하였고 새어머님께는 한복과 반지를(어떤 것이었는지 기억이 없으나 아마 금반지였을것이다) 준비 하였다.

곧 이어 상공회의소앞 한식집서 회사 사장님과 사장님의 장인어른과 (그때 60 이 넘으신분이었다) 그 가족들 하고 우리 가족과 중매을 한 호선생님 남매등 조촐한 피로연(?)을 한후 저녁 기차편으로 시골로 가시게 하였다.

새어머님의 성은 朴씨시었다. 전번의 陸씨 어머님은 아버님을 참으로 정성껏 모시었으므로 할아버지의 미움까지 받으셨으나 어버지께서는 10년을 같이 사시면서  陸씨 어머님과는 잉꼬부부 같이 지내셨다. 그 후 어머님을 두 분을 더 모셨는데도 유독 아버님은 돌아가실때까지 陸씨 어머님을 못 잊어 하셨다.

육씨 어머님께서는 승수가 어릴때 무척 귀여워 하셨다. 우리집 사람과는 오랫동안 함께 생활을 하였으므로 우리하고도 정이 무척 많이 들었었다. 우리 식구가 전부 서울로 올라온 후 돌아가셨기에 변변히 병간호도 못해드려 지금도 생각하면 못내 죄송스럽고 아쉬운 마음 금할길 없다.

그러나 朴씨 어머님은 반대로 할아버지께는 무척 잘 하셨나보다. 사흘들이로 할아버지의 속옷을 갈아 입혀 주셨으며 매일같이 머리까지 감아 드리셨다 한다.

그러니 자연히 아버님께는 좀 소홀히 하셨나보다. 자주 다투신다고 명절때 고향으로 내려가면 할아버지께서 나한테 일르시었다. 그래서 나는 朴씨 어머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저는 어머님을 모셔온 장본인입니다. 어머님을 저와 우리집 사람은 무척 좋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님을 돌아가실때 까지 평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게 하기 위해 어머님을 모신것입니다. 만약 아버님을 평안하게 못 모신다면 어머님은 필요 없지 않습니까." 朴씨 어머님은 우리 두 내외를 무척 좋아하셨다. 고생스럽더라도 (시골이니) 우리 두 내외를 봐서 참는다고 하셨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아버님을 위한 어머님이지 우리를 위한 어머님을 아니지 않는가.

그 후는 아버님께 좀 신경을 써서 당분간은 평온 하셨다. 그런데 어느날 어머님이 서울의 우리집에 보따리를 싸가지고 올라 오셨다. 이유는 아버님하고 말다툼을 하시고 아버님께서 헤어지자고 하시어 보따리를 싸가지고 왔다 한다. 나는 어머님께 무조건 내려가시라고 하였다. 가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고 앞으로 더 잘하겠다고 맹세하라 하였다.

다음날 기차표를 사서 드리고 시골로 가시게 하였다. 그렇게 다시 평온한 날을 보내시였으며 그 후 朴씨 어머님은 아버님의 회갑을 치루었고 할아버지 돌아가실때 할아바지의 수발을 전부 들어 주셨다. 참 고마우신 분이셨다. 그러나 우리 형님 내외분과 친척들은 박씨 어머님을 무척 미워하셨다. 이유는 우리 아버지를 잘 모시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때마다 나는 어머님을 두둔하곤 하였다. 내가 모시고 오신 어머님이시였기에 더 잘 해드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두 내외는 박씨 어머님을 좋아 한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89세에 돌아 가신 할아버지의 수발을 정성껏 다 들었으며 두 늙으신분을 모시고 계셨기에 우리 두 내외는 항상 고맙게 생각 했고 또 그만큼 잘 해드렸다. 아버님을 더 잘 모셔달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어느날 박씨 어머님이 몸이 편찮으시다 하며 서울로 올라 오셨다.

진찰결과 "황달"이라 하였다. 용하다는 곳을 찾아가 치료를 하였으나 별로 효과가 없어 병원으로 한의사로 수없이 다녔으나 점점 병세가 악화 하였다 아마도 지금 생각하니 암이었나보다. 결국 서울의 우리집에서 운명 하셨다. 우리집에 오신지 꼭 10년만이다. 육씨 어머니도 10년 만에 돌아 가셨고 또 박씨 어머님도 10년만에 돌아가셨다.

벽제 화장터로 가서 화장을 하였으며 아버님이 가까운 임진강에 가셔 박씨 어머니의 재를 뿌리고 오셨다. 친정 동생이 있었는데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

육씨 어머니는 그래도 방아실 대추밭골에 산소가 있다. 그러나 박씨 어머니는 산소도 없다. 다만 우리의 기억속에 있다가 우리 마저 저 세상으로 가면 누가 기억이나 하겠는가. 

그 후 또 한번 새어머님을 모셨다. 팔순의 아버님이기에 그저 돌아가실때까지 편하게 모셔주시기를 기대하였으나 밭에서 나는 고추나 마늘 등을 몰래 대전의 자식들에게 날라다주는것이 주요 일이고 전기밥솥에 4~5일분 밥을 해놓고 집을 비우기가 다반사라하니 우리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서울에서 우리와 같이 살고 계셨던 형님 내외분을 설득하여 시골로 가시게 하여 85세에 돌아가실 때 까지 형님 내외분이 모시고 살도록 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도합 5번이나 결혼하셨다. 혹자는 불행한 일생이었다고도 하고 여러번 장가를 가셨으니 행복한(?)일생이 었다고 하였다. 글쎄... 나로서는 아버지는 처복이 없으셨다고 본다. 평생을 청렴결백하게 사시다 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로서는 나의 인생살이에 많은 피해를 보았으나 혼탁한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지금은 무척 존경스럽고 나의 인생길에 거울이 되고 있음을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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