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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족 친척 이야기 [128호][옛날이야기]
2008-07-23 15:00:46

나의 조선족 친척 이야기

우리 할아버지는 사촌 동생까지 합하여 4형제였다. 우리 할아버지가 맏이시기에 우리 집이 큰집인 셈이다. 우리 할머니는 많은 자식을 낳으셨으나 다 죽고 달랑 남매만 건지셨다. 즉 나의 아버지와 고모한분 뿐인 셈이다.

밑의 둘째 할아버지는 4남3녀를 두셨고 셋째 할아버지는 3남1녀를 두었으나 나와 동갑이었던 딸 京子가 있었는데 소학교 다닐때 폐병으로 하늘나라로 갔다. 할아버지 사촌인 넷째 할아버지는 5남1녀를 두셨다. 그래서 네 분의 할아버지로 파생된 나와 종(鍾)자 돌림이 같은 형제들이 무려 52명이나 된다.

우리집이 큰집이기에 (鍾)자 돌림중에서 내가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항상 집안에 일이 있으면 연락책을 내가 도맡아 했었으며 서로 떨어져 살고 있었기에 잘못하면 아이들 이름이 같은 이름으로 중복될까봐 새로 애기가 태어나면 반드시 내게 연락하도록 하여 내가 작명을 일일이 해주고 있었다. 내가 중국에 오기 시작하면서 이 일을 형님께 맡겼으니 지금 그 밑의 승(承)자 돌림의 아이들과 또 그 밑의 아이들의 얼마나 되는지 요 근래는 나는 잘 모른다.

저번에 술회했듯이 둘째 할아버지의 둘째딸 銀圭고모(현87세-생존)가 조선족이 되었고 남편은 일제하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이다. 슬하에 아들만 7형제를 두어 지금 모두가 한국에 귀화하여 한국에서 잘 살고 있으며, 넷째할아버지 딸 粉圭고모(별세)가 조선족이 되어 남편이 연변에서 고위직을 역임하였고 4남1녀를 두어 다 중국에서 성공하여 잘살고 있다.

그런데 또 한집안이 나와 관련된 조선족이 있다. 

 넷째 할아버지의 둘째아들 昌圭아저씨가 있었는데 무척 똑똑했으며 우리 집안이 1937년 만주로 이주하기전 우리보다 앞서 만주로 가서 기초를 닦으시고 우리 집안이 만주로 대거 이주하게 한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던 분이다. 

그런데 1937년 우리가 만주로 이주하던 해 장질부사로 사망을 하셨다. 그때는 장질부사에 걸리면 거의다 죽었을때니 속수무책이었다 한다. 아까운 사람은 일찍이 간다 하였던가.

그때 다섯살된 사내아이 종선(鍾先)이가 있었다. 애 엄마는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으니 집안에서 개가를 하도록 주선하여 할빈으로 시집을 보냈다. 어린애 鍾先이는 큰아버지인 元圭아저씨에게 맡기고 갔다.

鍾先이는 나보다 3살 아래인데 가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할빈으로 갈때는 혼자 보낼 수 없어 꼭 내가 데리고 갔었다(나도 10살 전후였는데) 평산(平山)역에서 기차를 타고 할빈역에서 내려 역마차를 타고 주소를 물어물어 찾아가서 하룻밤을 같이 자고 오곤 하였다.

그때 할빈역에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동상이 있었다.  

해방되기 전 鍾先이는 큰아버지(元圭아저씨)를 따라 일본으로 갔으며 해방 후 일본에서 큰아버지와 같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해방된 조국은 혼란속에 모든것이 안정이 되질 않아서 생활이 무척 어려웠었다. 鍾先이 큰어머니는 일본여자였다. 1~2년 견디다 외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되돌아가 버렸으니 그때부터 鍾先이는 혼자 험한 세파를 감당해야 했다. 갖은 고생을 하며 그래도 장가를 가서 아들 하나, 딸 둘을 두고 대전에서 콩나물공장을 하면서 그런대로 잘살고 있었는데 부인이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버렸다. 그래서인지 콩나물공장은 문을 닫았다.

그 후 혼자서 3남매를 키울 수가 없어 우리 박씨 어머니가 나서서 주선하여 삼남매를 미국으로 입양을 보내게 되였다. 다행이 한집에서 삼남매를 함께 입양시켜 반듯하게 잘 길러주어 고맙기 이를데 없었다. 

그 후 삼남매가 장성하여 한국을 방문하여 상봉을 하였고 두 딸은 미국사람과 결혼하여 잘살고 있으며 아들은 한국에 와서 한국여자와 결혼하여 데리고 갔다 한다. 김치를 무척 좋아하고 있었다. 역시 한국의 피는 못 속이는가보다. 편지가 오가는것을 처음부터 내가 번역을 해주었고 가는 편지도 영어로 내가 대필하여 보내주곤 하였다. 서로 말이 안 통하니 무척 답답했으리라. 그 후도 서신이 오갔으나 내가 중국에 온 후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앞서 이야기 한데로 鍾先이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고 어머니는 개가 하였으며 큰아버지를 (元圭 아저씨) 따라 일본으로 가서 살기도 하였다. 해방후 고국에 돌아와 혼자 힘들게 살았으며 겨우 결혼하여 아들딸 낳고 잘살게 되였는데 아내의 가출로 가정이 파탄된 셈이다.  파란많은 삶을 살아왔다.

지금은 새로 얻은 아내와 영등포에서 잘살고 있으며 올해 나이가 벌써 76세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나를 무척 따랐으며 지금도 가끔 국제전화로 안부 전화가 오가고 있다. 지난해 한국 갔을때 만났으나 건강이 별로 좋질 않았다. 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었으며 가끔 방송국에서 수염있는 노인을 촬영할 때는 불려가서 용돈을 번다고 한다. 방안에 갓이 걸려있었다.
86년에 조선족을 초청할 수 있게 되어 鍾先이는 할빈에 계신 어머니를 한국에 초청하여 모자가 상봉을 하였으나 그 후 가서 뵙지 못하고 두 분 다 타계하셨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할빈에 가서 鍾先이의 의붓아버지도 뵈었고 그 형제들을 만나서 식사도 같이 하고 술도 같이 하며 노래도 같이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의붓아버지는 옛날 노랫가락을 멋지게 잘 부르시었다.  슬하에 1남3녀로 사남매를 두었고 지금 다 할빈에서 잘살고 있다.

첫째딸은 남편과 일찍이 사별하였으며 딸과 함께 한국에 와서 일하여 돈좀 벌어와서 할빈에 집을 사서 잘살고 있다 한다.

둘째 딸 成蘭이는 여러번 한국에 왔었으며 제일 똑똑하다. 그의 남편 둘째 사위 류룡한(柳龍韓)은 할빈전투경찰학교(武警) 교장을 지냈었던 사람이다.

할빈전투경찰학교 교장에 재직할 때 나를 자가용으로 옛날 내가 살던 핑산(平山)으로 아청(阿城)으로 안내하여 주었으며 그후 나와 함께 지시(鷄西), 쟈무스(佳木斯)의 내가 다니던 중학교가 있던 챵파(長發)로 그리고 티애리(鐵力)까지 동행하여 주었다.

그간 많은 한국 사람과 접촉했으나 모두 허풍만 떨고 술과 여자만 좋아했지 실컷 심부름만 시키고는 실천하는 사람을 하나도 못보았다 한다. 그래서 한국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 하였다. 참으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중국의 조선족에게 실망을 주었던것 같다.

퇴직한후 나하고 북경과 천진에서 한방에 3-4년을 기거하면서 고락을 같이 하였으나 지금은 할빈에 돌아가서 낚시를 즐기고 있다. 낚시는 프로급이며 한국의 역사는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대학 때 역사 전공이었다 한다.  나를 3-4년 따라 다니더니 한국 사람중에 이런 분도 있었구나 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다. 

독서를 너무 좋아하여 그 후 많은 책들을 한국에서 사다가 주었다. 지금은 나때문에 한국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한다.

그들은 사실상 나하고 혈연관계가 없다. 그러나 나보고 형님이라고 오빠라고 부르고 있으니 정감이 간다. 요즘은 내가 연락이 뜸하니 섭섭하게 여기고 있을게다.

셋째는 남편이 능력이 있어 한국에 여러번 오갔으며 활발히 사업을 하였으나 그후 암으로 저세상에 갔다 한다. 지금 혼자 살고 있으며 가끔 한국을 다니고 있을게다.

넷째는 아들인데 구정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한국을 한번도 못갔다 하였으나 이제 조선족의 한국비자가 좀 수월해지면 언젠가는 가게 될것이다. 이렇게 나는 鍾先이의 어머님으로 인하여 중국에 조선족 친척이 하나 더 생긴 샘이다.

지금 중국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은 모두가 이러한 인척관계가 얽혀져있으니 어찌 남남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나는 이곳이 타국이라는 생각을 가끔 잊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이 20년 앞서 중국과 수교한 일본사람보다 더 많음은 우연이 아니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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