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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야기 [132호][옛날이야기]
2008-10-29 10:26:34

서울 이야기

서울은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다. 북한산을 등 뒤로 하고 앞으로 남산이 솟아 있고 그 너머로 한강의 맑은 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사방이 산이며 숲이 우거져 있으며 옛날에는 오염이 안 되였으니 한강물을 식수로 사용 하였고 겨울에는 한강의 얼음을 톱으로 썰어서 보관 하였다가 여름에 쓰군 하였었다. 지금은 오염이 되어 이곳에서 잡은 고기도 못 먹게 되었으니..... 씁쓸하기 그지없다.

옛날에는 서울에 전차가 있었다. 하나는 돈암동서 용산까지고 하나는 남양동에서 효자동까지 가는 좀 작은 것이 있었다. 이 전차를 타고 효자동에서 내려 고개를 넘어 세검정의 자두 밭에 가서 시원한 골짜기 물에 발을 담그고 자두를 사먹고 더위를 식히며 즐기던 때가 그립다. 지금은 자두 밭은 온데간데없고 집들만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리고 동대문에서 뚝섬 가는 전차도 있었다. 이 전차를 타고 배추밭을 가로질러 뚝섬에 가서 물놀이하던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수영을 하다가 지치면 황포돗대의 배위에서 석양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한강에서 낚은 고기로 끓인 매운탕과 막걸리를 마시다가 심심하면 강 건너에 배를 대고 언덕을 넘어(지금의 강남) 배밭에 가서 배를 사와서 먹곤 하였다. 배타고 배먹으니 배가 불러 부러울 게 없고나.....하며 여가를 즐기던 때가 그립다. 그리고 가까운 남산의 산책도 좋았고 남산위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며 소주 한잔도 일품 이였고  북한산의 드라이브 코스로 차를 몰고 가다가 휴게소 식당서 서울을 내려다보며 식사하던 그 기분 잊을 수가 없다, 주말이면 정능골짜기로 우의동골짜기로 도봉산으로 다리품을 팔았고. 소요산의 가을단풍이 멋있었고 수락산골짜기의 시원한 물에서 손으로 피라미를 건지며 즐거워했고, 불암산 밑 배밭의 배는 정말 꿀맛 이였다. 구파발을 우측으로 돌아서 북한산 뒤쪽의 골짜기의 맑은 물에 발을 담구고 토종닭백숙에 소주 한잔 마시며 다 같이 즐거운 주말은 보내던 그때가 그립다. 관악산을 타고 남서쪽으로 빠지면 갈대숲을 지나 안양으로 나오던 길이 무척 좋았다. 남한산성의 오솔길도 좋았고 신촌서 교외선의 기차를 타고 송추유원지나 일영유원지에 가서 주말을 보낸 것도 즐거운 추억이다. 여름에 한탄강의 맑은 물가의 모래사장에 텐트치고 1박2일을 즐기던 추억도, 임진강변서의 장어구이와 소주한잔의 추억도 그립다. 서울 한복판을 흐르는 청계천가의 판잣집 2층에서 막걸리 먹으며 목이 터져라 젓가락 과 주전자 뚜껑의 장단에 맞추어 노래 부르다가 뒷창문을 열고 청계천에다가 시원하게 방뇨하며 스트레스를 풀던 그때가 그립다. 수원으로 수원갈비를 먹으로 또 딸기밭에서 직접 딸기를 따며 먹던 일과 그 무렵 유명한 안성포도를 먹으로 원정 갔던 일들이 추억으로 남는다.

1997년 집사람을 천진으로 데려온 후 2007년까지 거의 10년을 한국에 가질 안했다. 이유는 모처럼 가면 만날 친척과 친구등 모두 다 만나려면 한 달도 모자랄 판이다. 만약 안 만나고 오면 누구는 만나고 왜 나만 빼고 안 만나 주었냐고 하는 원망이 무서웠다.

그래도 옛날 같으면 자식들과 손자손녀가 보고 싶어서 자주 갔었을 텐데 교통과 통신이 발달되있는 요즈음은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싶으면 방학을 이용하여 매년 중국에 왔으며 또 인터넷의 발달로 메일과 홈피로 또는 화상통화로 매일같이 대화할 수 있으니 번거롭게 가고 싶질 안했다고 본다.

그러던 중 중국정부의 비자발행이 한 달씩으로 변하는 바람에 금년 들어 여러 번 한국에 가게 되었다. 10년 만에 가본 한국은 너무 변해 있었다.

서울은 더더욱 변해 있었고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살던 김포도 너무 변해 있었다. 1984년 내가 서울서 김포로 이사 갈 때는 김포가 군사보호지역이기에 땅값이 다른 곳보다 싸서 김포로 이사 갔었는데 지금 가보니 김포시 전체가 온통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변해 있었다. 그때 1000평(3000평방미터)의 밭을 2천만 원에 샀었는데 1997년 5억에 팔고 중국에 왔는데 작년 그 땅이 30억 원의 보상을 받았다 한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가는 곳마다 빌딩과 아파트 숲이 들어서있고 도로도 너무 변하여 동서남북도 분간할 수 없도록 변해 있었다.

1963년 서울로 올라와 하숙생활로 시작하여 1984년까지 서울서 살았다. 20여년의 서울생활은 지금 돌이켜볼 때 참으로 고생도 많았지만 낭만적인 서울 생활이었다.

처음 서울 도착하면서 하숙생활를 하였다. 미아리서 동자동으로 해방촌으로 신당동으로 수없이 옮겨 다녔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고부터도 역시 하숙생활을 하였다.  식구가 서울로 올라온 후 전세집으로 살림을 시작하였을 때도 신당동에서 동화동으로 다시 신당동으로 왔다 갔다 일 년에 두 번씩 수 없이 이사를 다녔다.  그리고 생전 처음 답십리에 집을 사서 이사를 갔다. 그리고 또 답십리에서 건너편에 좀 큰집으로 다시 군자동의 2층집으로 그리고 서교동으로 망원동으로 이사를 다녔다.

84년 여름 망원동이 한강물로 수해를 입었을 때 그 집을 팔고 김포로 이사를 갔다. 참으로 많이 이사를 다녔으나 부동산 투기에는 문외한이기에 그저 일 이외는 생각을 못하고 살아왔었다. 김포에 이사는 갔어도 사무실은 여전히 서울에 있었음으로 중국에 오기 전까지 서울을 떠나지 않고 살았었다.

60년도에 처음 서울 왔을 때는 6.25의 상처가 미쳐 아물지 않았을 때니 산비탈에는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서울역앞 대우삥딩 옆도 온통 판잣집이 있었고 남산을 끼고 있는 해방촌도 판잣집이 수두룩했었다.  서울은 북한산을 뒤로하여 사방이 산으로 둘러져 있기에 산비탈에는 의래 피난민들의 판잣집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지금의 성남시는 판자촌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하여 생긴 도시이다. 서울에 처음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할 때 신촌의 와우아파트가 기억난다.  산기슭에 판자촌을 헐고 지은 최초의 아파트는 기술부족과  졸속으로 부실하게 지은 것이 결국 붕괴되는 불상사가 생긴 것이다. 그리하여 그때의 김현욱 불도저 시장이 옷을 벗었다. 군대식 밀어붙이기의 표본이 된 것이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니 유명한 서울의 빈대는 사라지고 대신 바퀴벌레가 생기기 시작 하였다.

마포아파트에 살 때 바퀴벌레가 어찌나 많던지 매일 한바가지씩 쓸어낸 기억이 난다.

이번 한국에 간 김에 옛날 살던 답십리에 가보았다. 옛날 내가 살던 집은 온데간데없고 산마루까지 집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걸어서 남쪽의 장안동쪽으로 가보니 옛날의 논밭은 하나도 없고 그저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있어 낯설기만 하였다.

시간이 있어 전철을 타고 소요산으로 가보았다. 3시간 걸려 소요산역에 내려 보니 여기도 역시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으며 옛날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판자촌사람들이 이주했던 성남으로 가보았다. 이곳도 옛 모습을 찾을 길 없고 역시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이제 옛날 서울의 정겹고 낭만적인 그 시절은 온데간데없고 서울근교는 산을 깎아서  온통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서 아파트 값만 올라갈 것을 바라며 정신없이 뛰며 살고 있는 서울이 나는 말세의 징조 같이 보이는 것이 나만의 착각일까?  그래서 나는 서울이 이제 정이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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