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글마당

실로암쉼터
전체글 수: 25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며 [134호][옛날이야기]
2009-01-03 16:01:15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며 

내가 살아온 과거를 돌이켜보니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살아 왔고 이제 남은 여생을 이곳 중국에서 좋은 이웃들을 만나 행복하고 건강하게 해로하며 마음의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가만히 생각하여보니 나는 아마도 어릴 때부터 역마살이 참으로 많이 꼈는가보다.

아버지가 교편을 잡고 계셨기에 자주 전근을 하게 되니 어릴 때부터 자주 이사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나의 형님은 충청북도 옥천에서 태여났고 나와 내 밑 여동생은 충천북도 단양에서 또 그 밑 여동생은 옥천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6살까지 할머니 젖을 빨았다 한다. 충북 단양서 충남 대평리로 충남 유성으로 그리고 충북 지탄리에 있다가 옥천의 대정리로 옮겼다. 그때 내 나이 7살 때였다. 8살에 일학년을 마치고 9살 되던 해 봄 소위 신천지인 만주로 온 식구가 이주하게 되여 행복한 소년시절을 만주 (지금 동북삼성)에서 보냈다. 그러던 것이 중학교 다니던 16살에 해방이 되면서 부터 나의 운명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되었다. 통신과 교통이 두절된 홀란중에 두달만에 집으로 돌아올수가 있었고 다음해 17살에 군에 입대하여 첫 전투를 해야 했고 18살에 두만강을 건너 아슬아슬하게 38선을 넘어 다시 충청도 두메산골 고향으로 9년 만에 돌아왔다. 그리고 두메산골에서 초근목피로 고생을 하며 농사일을 배우고 있는데 6.25가 발생하였다. 그 와중에 어머님이 오랜 지병 끝에 40대 초반인데도 불고하고 하늘나라에 가셨기에 동네사람들이 피난을 떠나는데도 피난을 못 갔다. 여기서도 나는 용케 살아남게 되었고 수복후 대한민국 첫 번째 징집령으로 다시 국군에 입대 하게 되었다. 한 달 남짓 훈련받고 일선에 배치되어 전투에 투입되고 날이 새면 80%가 전사 하던 때인데 여기서도 용케 나는 살아남았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은 그때 20대 전후의 청년이였기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모두다 겪었던 일들이다.

23
살에 장가들고 내나이 30에 사남매를 두었다. 9년 동안의 시골 생활을 청산하고 55년도에 홀로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취직을 하였다. 대학다닐때도 미아리서 남영동, 동자동, 해방촌, 그리고 신당동으로 하숙을 옮겨 다녔다. 시골서 식구가 올라온 후로도 신당동에서 동화동 또 신당동으로 이사를 다녔다. 이렇게 전셋집을 전전하다가 답십리 1동에 생전 처음 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그 후에 답십리1동에서 2동으로 그리고 군자동, 서교동, 망원동등 으로 집을 팔고 사면서 이사다니다가 84년 한강물이 넘쳐 망원동집이 물에 잠겼다. 그때 수재민으로서 북한에서 준 쌀과 뽀뿌링을 받았었다. 그후 망원동 집을 팔아 30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김포의 야산 밑의 밭 1000평을 사서 집을 짓고 시골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88년에 중국을 오가기 시작하다가 아애 97년에 김포집을 팔고 안식구까지 중국으로 대리고 와 버렸다.

내가 처음 중국땅을 밟은 것은 1988년 봄이었다. 무역을 하고 있었는데 태우 대통령이 된후 갑자기 노조가 생겨 공장들이 엉망이 되어 벼렷다. 수출품의 가격이 다락같이 올라 도저히 수출을 할 수가 없어 중국을 오기 시작 한 것이다. 국교전이기에 안기부에서 교육받고 홍콩을 거쳐 북경으로 들어 왔었다. 그러나 중국서의 계획은 여의칠않아 화김에 공장을 차렸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한국에서 번돈 다 중국에 쏟아 버리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배운것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중국이 좋아져서 지금까지 눌러 살고 있다. 이제 2009년이 되였으니 어느새 중국생활 2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 중국생활 20년 동안 참으로 많은곳을 다녔다. 북경과 천진 인근은 물론 東北三省의 여러 성시 즉 대련, 무순, 심양, 안산, 톄링, 사평시, 장춘, 길림, 할아빈, 아성, 목단강, 링코우, 계서, 벌리, 쟈무스, 티에리로 다시 연길, 도문, 훈춘과 백두산으로 돌아다녔고 河北省은 탕산, 진황도, 북대하, 남대하, 석가장, 랑팡, 빠시, 헝수이, 청현, 창주, 우쵸, 덕주, 山西省의 태원, 린푼과 陜西省의 서안과 四川省의 청두와 河南省의 개봉, 상구, 민권 등으로, 山東省은 제남, 태안, 양신, 청도, 위해 연태 등으로, 남쪽은 상해, 항주, 소주, 우시, 남경으로 그리고 링퍼, 온주, 복주, 샤문, 광주, 동완, 심천 그리고 해남도로, 云南省의 곤명, 시상반나까지 수없는 곳을 다녀왔지만 중국이 너무 커서 아직 못가본곳이 더 많으나 가보고 싶어도 지금으로서는 안식구가 건강이 나빠서 갈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주로 천진서 생활을 했으나 북경서도 3년을 살았었다. 천진은 북쪽을 두시간이나 가야 산을 만난다. 그래서 항상 산이 그립다. 북쪽의 산은 연산산맥의 일부며 진황도의 산해관서 시작한 영산산맥은 천진의 북쪽을 거쳐 북경을 휘돌아가고 있다. 이 연산은 그 유명한 만리장성이 있고 또 많은 기암절벽과 동굴과 호수가 있으며 고적과 관광지로도 아주 훌륭하다. 산이 그리워서 그동안 천진의 산과 북경의 산들을 참으로 많이 다녔왓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많은곳을 다닌 것 같다. 중국 오기 전에도 무역을 하였기에 많은 나라들을 다녔으니 진짜로 역마살이 꼈나보다.

한국에서 대학졸업하고 취직하여 사회생활을 시작 하면서부터 나는 정신없이 살아왔었다. 심지어 1년에 쉬는 날이 설날과 추석 이틀뿐 이였고 일요일도 없이 한 달에 반은 회사에서 밤을 새우면서 일하기 위하여 태여난것 같이 살아 왔었다. 중국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도저히 이해 못하는 부분이 한둘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중국생활 20여년이 되다보니 나도 같이 동화되어 지금의 생활이 몸에 배여 버렸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르겠다. 이래도 한평생 저래도 한평생인데 말이다. 왜 그렇게 동동거리며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살아온 결과는 별거 아니지 않은가.

지나온 긴 세월 참으로 힘들었던 일,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지나고나니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한평생 살아오면서 잊지 못할 너무나 고마웠던 사람들, 그리운 사람들... 벌서 저세상으로 간 사람이 더 많다. 나도 이제 인생의 마무리를 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내 마음은 아주 평안하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이 나이가 되도록 건강하게 살게 하여 주시고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함께 하여 나를 지켜 주셨음을 늘 감사하고 있다.

이 “옛날이야기”를 쓴지도 이번이 79번째고 내 나이도 해가 바뀌니 벌서 만 79세가 된다. 세월이 流水같다더니 정말 실감나는 말이다.

이번 호로 “나의 옛날이야기”를 마지막 회로 정하기로 했다. 그동안 나의 서툰 글 솜씨인데도 불구하고 꾸준히 끝까지 애독하여주신 모든분들게 정말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에 행운과 축복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 합니다.

추천 : 0
코멘트 0
번호
제목
글쓴이
일자
추천
25
2009-01-03
0
24
2008-10-29
0
23
2008-08-25
0
22
2008-07-23
0
21
2008-07-23
0
20
2008-03-20
0
19
2008-02-22
0
18
2008-01-18
0
17
2007-12-18
0
16
2007-11-19
0
15
2007-10-16
0
14
2007-10-16
0
13
2007-08-16
0
12
mk
2007-07-16
0
11
2007-07-09
0
10
2007-07-09
0
9
2007-04-18
0
8
2007-03-16
0
7
2007-02-13
0
6
2007-01-18
0
 
CopyrightⒸ by TJPlaza 2014.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