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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국 땅을 밟고 (5) [113호][옛날이야기]
2007-03-16 16:42:45

        1988년 중국 땅을 밟고 (5)

 

목단강(牧丹江)을 건너 링코우(林口)를 지나 계서(鷄西) 에 도착하였다.

 

계서(鷄西)는 조그마한 도시였으나 무척 깔끔한 도시였다. 계서에서도 중국인과 식사하는 바람에 매일 중국음식만 먹다가 조그마한 조선족이 경영하는 식당에 간 적이 있었다. 처녀가 친구와 함께 경영하고 있었는데 테이블이 두 개 뿐인 아주 작은 식당 이었다. 모처럼 김치를 먹으니 살 것만 같았다. 주인 처녀는 운동선수라며 해마다 전국체전에 나간다 한다. 일찍부터 돈벌이에 뛰어든 이 처녀는 지금쯤 계서(鷄西)에서 아마 큰 식당을 경영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된다.

 

이틀 밤을 이곳에서 자고 쟈무스(佳木斯)를 가는데 버스를 이용 하였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옆 산중턱 곳곳에서는 석탄 캐는 광구가 보여 참으로 부러운 나라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벌리(勃利)를 경유하여 쟈무스(佳木斯)를 향하였다. 이 벌리(勃利)역시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곳이다. 1945년 8월10부터 1010일까지 있던 곳이다. 교통이 마비되어 집에 못가는 나를 위해 친구가 자기 집에 같이 가자고 하여 친구 집에서 2달간 신세를 졌다. 그때 이 집에서는 예순이 넘으신 할머니로부터 친구 형님 내외분까지 나에게 너무나 친절하게 잘해주신 분 들이었는데 그 후 이 집은 고향인 조선으로 갔다 한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벌리(勃利)는 아주 번화한 거리로 변해 있었다. 벌리(勃利)는 해방 전에 소위 개척단 이라 하여 일본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던 곳이다. 그렇게 도도했던 일본사람들이 갑자기 나라가 망하니까 온데 간데 없어져 버린 것이다. 나라를 책임지는 지도자의 잘못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무고하게 죽임을 당하거나 도탄에 빠져 기아와 질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수 없이 보고 있다. 우리가 지금 중국이라는 타국에서 어깨를 펴고 살고 있는 것은 모두다 우리 조국의 그늘 덕이라 본다.

 

그때 만주에서는 일본사람에게 빌붙어서 거들먹 거리며 얄미운 짓을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인의 눈으로 볼 때 일본사람 에게 빌붙어 살고 있는 얄미운 민족으로 느꼈을거라고 생각 하였다. 그래서 우리들은 소련군이 진주하면 우리도 중국인들과 껄끄러운 사이로 변할까 하여 무척 조심스러웠으나 소련 전투기들이 하늘에서 삐라를 뿌리고 있었는데 그 삐라에는 “지금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을 상대로 그간 중국 및 소련과 연합하여 싸우고 있다 우리는 한 목적을 위하여 함께 싸운 동지들이니 다 함께 힘을 합하여 일본인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자! “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중국인들과 더욱 친해지게 되었다. 나는 이때 조국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한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였던 것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해질 무렵 쟈무스(佳木斯) 에 도착 하여 조선족 식당 이 있어 저녁을 사먹었는데 알고 보니 주인은 중국인이고 복무원 아가씨만 조선족이어서 실소를 하였는데 역시 음식 맛이 별로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쟈무스(佳木斯) 바로 밑의 장발(長發)역에 갔다. 이 장발(長發)은 옛날 해방 전에 내가 다녔던 중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그때는 고등학교가 없었고 중학교 4년을 졸업하면 대학을 갔다. 나는 이곳을 졸업하면 신경(지금의 長春)의 수의과 대학에 진학하여 수의가 되어서 만주벌판에 멋진 큰 농장주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역사 동쪽 언덕 밑에 있던 크고 넓던 학교와 축사들은 온데간데 없고 모두 밀밭이 되어 있었다. 역무원에게 물었더니 학교는 해방 후 바로 헐렸으며 작년에 일본사람 한사람이 와서 옛날 학교에 대하여 묻더 란다. 아마도 나의 동문 중 한사람이었을거다. 그때 이 학교는 일본인, 조선인 그리고 중국인 이렇게 세나라 사람들이 함께 공부하였던 곳이다.

 

그 사람이 누구였을까 이름도 성도 남기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었으나 그도 나와 같은 심정으로 여기를 왔을게다. 언덕에 앉아서 옛날을 회상하니 공연히 가슴이 뭉클하여 세월의 무상함을 곱씹어야 했다. 몇 사람이나 살아남아 있을까? 격동기의 한복판에 살아야 했던 우리세대들만이 겪어야 했던 한 많은 세월들이 주마등같이 떠올라 학교자리를 내려다보며 몇 시간을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저 아래 밭 한가운데는 교실이 있었고 바로 우측에 돈사와 양을 기르던 축사가 있었다. 이 돈사는 2학년이 되어 축사당번을 친구와 둘이서 먹고 자면서 했던 곳이다. 돼지를 돌보면서 나는 돼지가 이외로 매우 영리하고 깨끗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잠자리도 마른 데를 골라 자며 소변도 일정한 곳에 가서 가려 누었고 눈치도 있고 사람을 잘 따랐다. 가끔 냇가로 목욕을 시키고자 축사 문을 열면 금방 눈치를 채고 수 십 마리가 줄을 서서 나의 뒤를 졸졸 따라 오곤 하였다. 냇물 속에 들어가서 같이 수영하며 목욕을 했다. 다가가서 억센 솔로 박박 닦아 주면 눈을 지그시 감고 기분 좋아하는 모습이 무척 흐뭇하였던 기억이 난다

 

우측으로 더 나가면 기숙사가 있었고 그 옆에 계사가 있어 수백 마리의 닭을 기르고 있었다. 닭장 안에는 온돌을 깔아 겨울에도 따뜻했으며 밤에도 전등으로 밝게 하여 1년 내내 알을 낳게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병아리의 부화하는 방법 및 암수의 구별법과 수탉의 거세술을 배웠다. 수탉을 거세하면 성질도 순해지고 살도 찌고 고기 맛도 좋아진다 하였다. 그리고 학교 좌측에는 말을 기르는 축사가 있었다. 여름에는 이곳도 30도가 넘었다. 그래서 오전에는 축사당번이 아닐

 

때는 밭에 나가 농사짓는 실습이라고 밭일을 하고 오후에는 교실에서 공부를 하였다.

 

10월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다음해 5월까지 눈이 녹질 않는다.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눈이 모여 하얀 평지로 변하였다. 한겨울에 눈이 하얗게 덮이고 바람 없는 날 전교생이 들판에 10m 간격으로 줄 서있으면 언덕에서의 깃발신호에 따라 전교생이 함성을 질렀다. 그러면 함성에 놀라서 숨어있던 토끼나 꿩들이 튀어나와 도망을 가기 시작하나 가도 가도 학생들이 서 있는지라 토끼는 쭈그리고 앉아서 잡히고 꿩은 날다가 힘에 겨우면 눈 속에 꼬리를 내놓고 머리만 박고 숨는 것을 손으로 잡던 일이며, 교실이 너무 추워서 책상 위에 침을 뱉어서 얼음 기둥을 만들며 강의를 듣던 일, 겨울에 등교 할 때 바람이 너무 세게 불면 뒷걸음질하며 등교 하던 일, 16살 조그마한 어깨에 장총을 메고 영하35도의 새벽에 군사훈련을 받았던 일, 그 넓은 학교 밭에서 한여름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긴 호미로 줄을 서서 밭일을 하던 일, 그때 그 일들이 엊그저께 같은데 어느덧 반백년이 흘렀으니.........

 

1945 88 피난을 남쪽으로 떠나야 하는데 우리가 피난을 가면 저 많은 가축들은 울안에서 굶어 죽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각 축사마다 돌아다니며 문을 활짝 열고 가축들을 밖으로 내놓았다. 마침 가을이라 우리 학생들이 가꾸던 밭에는 밀과 감자 등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 토끼, 돼지, , , 말 등 수많은 가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니 온 들판이 마치 진짜 동물농장 같이 장관이었다. 후에 현지인들이 잡아먹을 것은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동안이라도 자유를 만끽 하게 해준다는것 만으로도 가슴 뿌듯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기약도 없이 철길 따라 남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반백년이 지난 오늘 나는 이곳을 찾아왔으나 보이는 것은 바람에 넘실거리고 있는 밀밭뿐이 아닌가.

그때는 그렇게도 절망적이고 또 고생스러웠던 기억인데 왜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것일까. 가슴이 뭉클 해지며 목이 메이고 눈앞이 흐려졌다.

 

꿈 많던 소년시절 품었던 푸른 꿈을 순식간에 앗아 갔던 그때 그 시절

그래도 그리워 백발이 다 되어 다시 찾아 이곳에 오니

강산은 여구하나 다니던 학교는 흔적도 없네

언덕에 홀로 앉아 옛일을 회상하니

그리운 옛 친구 얼굴마저 흐릿하여

세월의 무상함에 눈앞이 흐려지며 목이 메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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